
사실 여는글은 저희 쪽에서 여는 글이 아니죠. 독자 당신들께서 연세지 책꺼풀을 열어젖혀 주심으로써 비로소 열렸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들고, 펼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귀한 곳에 귀한 분이!
편집장은 다른 편집위원들보다 학기당 45,000원(한 달에 7,500원)을 더 받는데요, 그보다 편집장의 최고권한은 바로 이 지면을 빌려 독자 여러분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점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여는글을 쓰는 이 순간을, 그리고 여러분이 읽고 계신 이 순간을 편집장 임기를 시작한 7월 초부터 기다려 왔습니다.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이 살다와 죽다, 두 가지로 표현되는 것만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어찌 됐든 살고, 살아지고, 살려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늘 예기치 않은 것이기에, ‘어떠어떠하게 산다’라는 것에 의미를 더 두게 되는 것이겠죠.
제호 ‘살아-가다’에는 살고 또 가다라는 두 가지 움직임이 담겨 있는데요, 산다는 것과 가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살고 계신지요, 가고 계신지요, 살아-가고 계신지요, 혹은 가며-살아 계신지요. 저도 올해 어느 하루,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삶이 자연스런 호흡이 아니라 가까스레 붙어있는 숨, 기어코 생존적인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아진다’라는 말조차 버겁고 미울 때가 있습니다. 산다는 생동성 자체가 휘청거리는 순간에는 감히 그것이 전제될 수가 없는데 말이죠.
오래 살아오던 곳을 떠나 이곳 대학에 모여 우리는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을 그저 경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 적어도 4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본다면. 적어도 우리 편집위원들은 대학을 그런 공간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삶의 공간으로서 학교를 조명했을 때, 각각의 편집위원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툭- 풀어놓게 된 것이죠.
사진전) ‘나의 살던 고향은’
편집위원 각각이 살던 고향을 되새기며 ‘나’를 구성해 오던 배경을 살피며 책을 시작합니다. 저는 마음배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편집위원들의 마음배경으로 깔려 있는 풍경을 천천히 음미해 주세요.다른 글은 읽지 않더래도 좋습니다. 꼭 이이들의 고향(어린 시절)을 들리어 주세요. 이런 마음배경을 가진 이가 이런 시선을 가지고 이런 글을 썼구나- 이런-이런-이런을 연결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특집) 우리가 사는 곳: ‘등록금과 공회전’, ‘닫힌 생협과 유령 조합원’
호주머니에 구멍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저는 평소에 구멍 뚫려버린 양말을 그냥 신고다니는데요, 날틀, 너머, 정강은 이 구멍을 저처럼 그냥 두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택했습니다. 이번 141호의 특집호의 제목은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이곳 대학은 학업을 위한 장소임과 동시에 ‘사는(dwell)’ 곳이자, 재화나 서비스를 ‘사는(purchase)’ 공간이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산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등록금과 공회전들’과 ‘닫힌 생협과 유령 조합원들’이 살피고 있습니다. 올해에 교내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등록금이 인상되었고, 교내 곳곳에는 CU 편의점이 들어섰습니다. 정강은 등록금과 대학,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서로 맞닿는 지형을 살핍니다. 날틀, 너머, 정강은 생협에서 CU로 바뀌게 된 움직임에서 시작해 자치 기구로서의 생협과 그 이름이 담고있는 생활과 협동과 조합을 고민하고 글을 썼습니다.
학내) ‘지속불가능한 연세대학교’, ‘연세대에서 살아남기’
I’m on the ‘넥스트 노벨’. 축하드립니다. 와와. 짝짝. 우리 학교는 정말 넥스트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그것을 PV(현재가치)로 환산해 재무제표에 잡아두는 일련의 평가들. 학교는 ‘지금’을 들여다보기는 잘하고 있을까요? 학내 글들은 지금, 여기 연세대의 현안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를 살핍니다. 정원은 ‘지속불가능한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이라는 기관이 기후위기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그곳에서 사는 우리 학생들은 또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동심, 두보, 정원은 ‘연세대에서 살아남기’를 고민했습니다. ‘연세’라는 이름 아래 빛나는 것들에 가려진 이
야기를 지적하며, 일상적인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대학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회) ‘대화의 알고리즘’
저는 1년 전까지만 해도 AI 척화비를 세우곤 했습니다. 어느 것이든 내 눈, 코, 입, 귀, 그리고 피부로 닿지않으면 그것과의 접촉 밀도가 너무 가벼이 느껴졌거든요. 이제는 씁니다! AI에게 연애 상담도 해 봤어요. X보다 제 마음을 잘 알아 메시지를 주더라고요. 지환은 ‘대화의 알고리즘’을 통해 사회 곳곳에 스며든 AI와의 공존을 살핍니다. 저도 그랬듯, AI를 상담 상대로 쓰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AI와의 ‘소통’이란 무엇인지, 채팅방을 나와서는 우리가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술 발전의 양면성을 고찰한 글입니다.
문화) ‘영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국내 최대 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30회를 맞았다고 합니다. 채원은 이번 학기를 쪼개어 1박 2일간 부산으로 향했고, 그곳 부산에서 또다시 시간을 쪼개어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으레 ‘영화’가 주어 자리에 들어가면 ‘본다’가 잇따르기 마련이죠. 여기에 채원은 ‘영화를-한다’의 여러 움직임을 담았습니다. 영화는 어떻게 계속되고 있을까요? ‘영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글에서 채원의 탐방기를 들여다보세요. ^^
에세이) ‘나의 해방일지’, ‘결혼 - 사랑 =?’, ‘외로움과 어떤 공간’
‘체계가 무조건 좋은 것인가를 실제로 의심해 보는 장르는 에세이 외에는 거의 없었다. 에세이는 비동일성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동일성을 실제로 의식하는 장르이니, 에세이의 급진성은 급진주의가 아니라는 점, 모든 일원주의를 포기한다는 점, 전체보다 부분을 더 강조한다는점, 편린이라는 점에 있다.’(@테오도어 아도르노 '형식으로서의 에세이')
에세이 코너에는 세 개의 글이 있습니다. 무화과는 학창시절에서부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추적하며 ‘나의 해방일지’를 썼습니다. 혜정은 ‘결혼 - 사랑 = ?’을 통해 결혼이라는 계약을 돌아보며,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 어떠한 내적인 힘, 사랑에 대한 추구의 태도를 말합니다. 금별, 선우, 현서는 ‘외로움과 어떤 공간’을 통해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나와 사회가 맞닿아 있는 지형을 살핀 글들입니다. 사실 에세이 자체가 외로움의 공간이죠. 이들의 외로움을 잘 들여다봐 주세요. 그러한 묵묵한 시선들이 외로움의 꺼풀을 하나 벗겨냅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본인만의 공간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고문, 길거리 인터뷰, 연표와 독자모임도 빠짐없이 읽어주세요.
끝으로 당신들께 감히 살으라고, 살아-가자고, 살아-가 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당신의 존재를 스스로부터가 늘 알아채고, 순간순간 그리고 다음 순간에도 잇달아 소중히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신촌 편집실에서
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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