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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편집위원회
사회

<119호> 너 노동자? 야 나두! _편집위원 성해

by yonseiji 2025. 12. 23.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또는 해 온 노동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노동보다는 아마 ‘알바’ [각주:1] 라는 말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질문에 조금은 머뭇거렸을지도 모른다. 언론에 노동만큼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없는데도 여전히 노동은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노동’이란 단어는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어서 이 단어를 생각하고 말하기를 낯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자라는 개념과 우리 자신을 거리 두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노동자로 살아간다.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꽤 오래 알바를 했다가 최근에는 비슷한 업종의 음료 제조 및 판매를 했다. 알바를 했을 때, 간혹 가다가 들었던 질문은 ‘과외를 하면 더 돈을 많이 벌지 않아?’였다. 요즘 유행하는 덕담인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를 대학생이 할 수 있는 돈벌이에 적용하자면 과외만큼 좋은 돈벌이가 없다. 물론 과외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가끔은 과외로 벌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낯설었다. 과외는 정신적 노동이고 정신노동이 ‘고급’ 노동이라 더 값을 많이 쳐주는 걸까? ‘적게 일하면 많이 못 버는’ 최저 시급의 알바를 하는 나에게 과외 알바는 한때 ‘진정한’ 노동이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내가 알바를 하던 시점에 공교롭게 엄마도 노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엄마는 결혼 전에 일을 했지만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대기업 2차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의 공장을 아빠가 인수했고 이 공장의 실질적 운영은 엄마와 외가 쪽 식구들이 맡게 되었다. 공장의 생산직으로 근무를 하는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나와는 멀게 느껴졌던 공장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론에 등장하는 파업을 하는 노조, 주말에 놀러 간 광화문에서 볼 수 있었던 노조의 시위 등은 가장 가까운 엄마가 노동자가 되어서야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사실 또 하나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노동자 문제는 우리 학교의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문제였다. 하지만 이전에는 학생의 관점에서 하나의 학내 이슈로 여겼다면, 지금은 커다란 노동 이슈 안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에 답하기가 머뭇거려진다면 ‘진정한’ 노동자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인가? 비정규직의 최저시급을 받는 단순 육체노동이 ‘진정한’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 글을 통해서 나는 우리가 노동과 노동자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알바생이자 취준생 [각주:2] 이던 내가 느꼈던 한국의 비정규직 일자리의 문제를 지적한 후에, 우리가 그동안 못 본 척해온 비정규직의 노동 현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사회 구조를 지적할 것이다.

알바몬과 잡코리아의 사이에서

‘성실함과 책임감을 겸비한 2n살 여자 OOO입니다.’ 알바몬, 알바천국 등의 구인·구직 사이트에 등록한 내 이력서의 단골 제목이었다. 도무지 직무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자기소개서와 증명사진까지 등록해야 하는 건 취업 지원서를 쓸 때와 똑같았다. 알바 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들은 대부분 최저시급의 비정규직 일자리였지만 일시적인 형태의 고용이라고 명시해놓은 곳은 거의 없었다. 본래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가 가지는 장점인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일할 수 있는 것과도 무관해서 ‘파트타이머’라는 이름이 무색해 보였다.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시간대를 찾아 구인·구직 사이트를 헤매지만,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또한 시급 표시란이 있지만, 그 존재감이 얼마나 희미한지. 나는 알바를 구할 때 시급 난을 유심히 본 적도 없다. 조금이라도 높은 시급으로 올려놓은 곳은 주휴수당과 야간 수당을 포함한 눈속임용 시급일 때가 많았고 그보다 훨씬 높은 시급은 보통 토킹바 [각주:3]  등의 유사 성매매 업소였다.

졸업 학기가 되자마자 취업에 조급해진 나는 잡코리아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대기업부터 공기업, 중소기업까지 엄청나게 많은 공고가 공채 달력에 있기에 순진하게도 취업난의 존재를 의심했다. 이렇게나 지원할 곳이 많다니! 내가 적당히 눈만 낮춘다면 나도 출퇴근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바몬과 잡코리아를 동시에 살펴본 순간,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알바몬에 있는 공고가 잡코리아에도 있었다. 잡코리아에서 관심 있게 본 공고에는 계약직, 수습, 인턴과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최근에도 한 언론사의 인턴 공고에서 ‘6개월 계약직’이며 해당 인턴은 ‘수료’ 기간이 끝나면 견습기자 지원 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게 ‘특전’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6개월을 일하고 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도 아니고 아무런 보장도 없다니, 심지어 인턴 기간의 임금을 따져 보니 최저임금과는 50원이 차이가 났다. [각주:4]

분명 알바몬과 잡코리아는 제공하는 서비스나 광고 [각주:5] 에서 두 사이트의 지향성의 차이가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두 사이트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오히려 꽤 많은 일자리가 교집합으로 존재하고 있다. 수많은 공고에서 ‘인재’를 구한다고 말하지만, 그 인재는 신입이라면 어디서나 풀타임을 일하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이트를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일자리가 혼재된 한국의 일자리 현실을 볼 수 있었다.

모호한 비정규직의 개념은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인 비정규직은 실은 법률용어가 아니며 다양한 고용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보통 계약직 등의 용어와 혼용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근로 형태는 외환위기 이후에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대량해고 사태로 인해 근로자 파견제와 정리해고제 확대 방안이 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각주:6] 일반적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분 짓는 기준은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지 여부이다. 하지만 이 분류 기준조차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양측에서 통일되어 있지 않다. [각주:7] 

이처럼 비정규직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지만,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일자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의 개념과 경계가 모호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위계나 그에 따른 처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임금 측면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을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임금은 차치하더라도, 최저시급이 오르면 인건비의 부담은 커지고 이에 따른 노동시간의 단축은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고용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각주:8]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운 현실에 비정규직 일자리는 최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 환경은 기본이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서비스 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만점의 ‘고객만족도’이다. 전자제품 대리점이나 수리점에서 기사들이 고객들에게 "평가점수는 만점으로 부탁드립니다" 하고 호소하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가? 2017년 대기업의 서비스센터 직원이 휴대폰 수리 후, 고객 만족 설문지에 포함된 단어를 스팸 설정하여 소비자가 설문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경우가 있었다. [각주:9] 고객 만족도 점수가 낮은 대리점은 재계약 시 불이익을 주거나, 대리점 사용자가 교체될 때 기사의 고용 승계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술 노동자들은 만점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고객만족도 점수가 낮다는 기업의 판단이 편협한 것도 문제인데, ‘매우 만족’ 즉 만점이 아니면 무조건 기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고객만족도 점수가 낮은 직원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하거나 개선 방안을 기업 측에서 찾아야 하는데, 애초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주 측은 그 정도의 관심도 없다. 고객만족도는 단지 기술 노동자를 감시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이 기준을 달성하지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고용에 불이익을 가한다. 비정규직은 이렇게 대우받아야 마땅한 일자리인가?

비정규직은 ’좋은 일자리’의 자격을 가질 수 없는가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 일자리의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항상 ‘좋은 일자리’의 논의는 정규직을 향해 있었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자신의 일자리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구직자들이 생계형 알바를 구한다. 즉 한 달의 임금을 받지 않는다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구직자들이 있다. 부양할 가족이 있거나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청년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대학에 갈 수도 없고 정규직이나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품지 못한다. [각주:10]  최근의 태안 김용균 씨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하던 도중 사고사했다. 김용균 씨의 개인사를 언론에서 앞다투어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진 않았지만, 그의 인생은 계속 반복되어 온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가난한 청년들은 지방의 공장 생산직 또는 발전 노동자, 전기 노동자와 같은 대기업과 공기업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는다.

이들이 당장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일자리는 위험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일자리들이다. 실제로 노동의 위험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고용 환경까지 이들의 목숨을 옥죈다. 김용균 씨 사고 이후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위험의 외주화’ 이슈가 이러한 일자리들의 고질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도 하청업체를 통해 유해성, 위험성이 높은 작업 환경을 외주화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외주화 문제는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다. [각주:11]  김용균 씨의 경우 위험한 노동 환경도 문제였지만 대기업의 인력 감축이 더 큰 문제였다. 지난 18일 파업에 나선 한국전력공사의 협력업체 전기노동자들도 한국전력의 배전운영 예산삭감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토로했다. [각주:12] 배전운영 예산을 지난해 대비 15% 축소하면서 협력업체들은 인력을 줄였고, 결국 소수 인원이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진 전기노동자들은 한전의 직접 고용과 안전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각주:13]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의 경우, 앞서 언급된 예시들처럼 매 순간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노동환경은 아니지만, 노동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일상적 감시와 실적에 대한 압박뿐만 아니라 언어 성폭력마저 빈번하게 가해진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해달라며 인권위에 현장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호소하는 것을 들어보면 기본적인 인권조차 존중되지 않는 이들의 노동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화장실은 원할 때 가게 해주고, 진상이나 성희롱 고객은 회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모든 말을 훔쳐 듣는 전자감시를 중단하라”고 외친다. [각주:14]  대부분이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콜센터 상담노동자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더불어 일상적으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문제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니다. 직접 고용이나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 인권은 정규직 전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미 오랫동안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아직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없는가? 좋은 일자리는 안정적인 고용과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위한 논의는 기본적인 노동자의 인권이 지켜져야만 가능하다.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지금의 비정규직 일자리 현실을 외면한 채로는 어떠한 해결책도 완전할 수 없다.

원청-하청의 구조: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지금까지 ‘좋은 일자리’가 되지 못한 비정규직의 노동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들의 노동 환경이 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왜 아직까지도 비정규직은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나? 그에 대한 답을 나는 원청-하청의 구조 속에서 무관심했던 대기업과 정부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지난 학기, 나는 전공과목 강의에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동문의 세미나를 들었다. 세미나에서 그가 근무하는 대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여러 지방의 공장에 방문한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공장의 근로자들이 너무 꼼꼼하게 일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며 그 대기업의 뛰어난 품질의 비결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레 엄마와 공장의 노동자, 그리고 노동 환경이 떠올랐다. 뛰어난 품질이 단순히 그들이 꼼꼼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계 단계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불량까지 잡아내기 위해 이들이 들이는 노력을 나는 안다. 생산직이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검수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 내는 노하우 또한 있다. 이들의 노동을 누가 단순 생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들의 노동이 과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항상 의문이 들었다. 많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 기업 유지에 필수적이다. 이 구조 속에서 많은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부품 생산이 그들의 주 수입원이 될 수밖에 없다. 바쁜 시즌의 제품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잔업과 야근에 투입된다. 하지만 대기업 제품의 수요가 적어지면 대기업과의 거래에 의존하는 여러 하청업체들은 재정난을 겪기도 한다. 대기업과의 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자체적인 제품 개발을 하려는 하청업체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대기업의 수요에 의존하다 보니 납품 기한 때문에 기술 개발 등에 신경 쓸 겨를도 없고 기술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각주:15]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럼 대기업은 공장에 지원해주는 거 없어?’ 원청과 하청의 구조에서 각각의 기업은 단지 거래 관계일 뿐인데 내가 너무 나이브한 질문을 던진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는 자생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빠듯한 실정에 대기업의 부품 납품만으로 운영되지 않나. 이 구조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문제는 하청업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하청업체는 왜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줄 수 없는가? 이들의 영업 이익이 대기업과 비교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2014년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과 그의 협력업체 간의 영업이익 격차는 3~4배 정도였으며, 대부분의 하청업체는 1, 2퍼센트의 영업이익률로 적자를 간신히 면한다고 한다. [각주:16] 

저임금 이슈와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계는 ‘위험의 외주화’를 문제로 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요구를 지속해서 해왔다. 이런 요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정작 그들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왜 이들은 이런 요구를 하는가? 불안정한 고용 환경 개혁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가능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선언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불안정한 고용 계약을 안정화하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점을 보였다. 전환 정책의 가이드라인이 모호해서 전환 대상자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직접고용 형태의 정규직이 아닌 자회사, 용역 등의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각주:17] 또한 실제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단순히 고용 형태가 바뀌었을 뿐 임금과 노동조건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각주:18]

한편 이와 같은 공기업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정규직 자격에 적합한지 평가하기 위해 시험을 도입하기도 하는데 정규직에 적합한 직원인지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기엔 지나치게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한다. [각주:19] 직무 관련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면 시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정규직 전환 제도까지 기업들의 잇속을 채우는 또 하나의 꼼수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업무와 관계없이 치루는 정규직 전환 평가는 노동자에게 부담만 가중될 뿐, 기업은 이를 모른 척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며 내세우고 있다. 정규직 전환은 단지 제도만을 위한 제도이며 노동자들의 실질적 처우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일자리의 질에는 무관심한 채 속 빈 강정 같은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 이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책이 결코 노동자를 고려해서 만든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구조적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할 부분은 외면하고 단편적인 해결책만 찾는 정부의 면모가 드러난다.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원청-하청의 구조에서 대기업과 공기업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번에 자료 조사를 하면서 우리나라는 노동법,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주휴수당이 바로 이러한 무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최저임금 산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지점은 주휴수당이었다. 주휴수당이란 근로자가 규정된 근로 시간을 채웠을 때 하루 이상의 유급 휴가를 주도록 규정한 제도이다. 고용노동부는 주휴수당에 해당하는 시간을 임금 산정 시에 노동 시간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업무처리 지침을 두었는데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재계 간의 의견 차이가 2018년 최저임금 산정 당시 있었다. 실제 8350원에 주휴수당으로 인한 1800원가량의 실질적 임금이 더해지면 실질적 최저임금이 10000원을 넘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와 소상공인은 업무처리지침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주휴수당은 가장 논쟁이 되는 지점이었지만 이 제도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 없이 단지 갑론을박만 오고 가며, 최저시급이라는 눈에 보이는 수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각주:20]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도 노동을 향한 무관심이 드러나지만, 노동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여전히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이거나 부정적이기까지 하다. 얼마 전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파업에 서울대 총학생회의 대처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침해하는 것”(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이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직접 불편함을 겪게 될 때면 이러한 인식은 수면위로 드러난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통학을 했던 나의 기억 속 파업은 약간의 불편함을 안겨주었던 경험이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배차 시간이 길어지고 역마다 정차 시간이 길어졌으며 조금 더 일찍 등교해야 했다. 하지만 이 사소한 불편함은 파업이 끝난 후 일상이 정상화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파업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 때문에 파업을 ‘누군가의 권리를 인질 삼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권리의 무게를 저울질할 수 있는 시혜적 위치에 서게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리가 누군가의 권리를 외면하고서 가능한가? 적어도, 우리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명제를 너무 자주 잊는다.

이 글에서 짚은 비정규직, 노동환경, 노동자 인권 등의 이슈는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동환경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논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많은 노동자에게 빚을 지며 살아간다.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우리 학교의 청소 노동자들에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에게 빚지지 않고 학교생활을 끝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들의 투쟁을 바로 옆에서 지나가며 봤던 기억은 있지만, 이들과 대단한 연대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적어도 이들이 투쟁을 하는 이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는 열악한 고용 환경과 노동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며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를 접했다. 그들에게 연대를 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성해 (holyorchid@naver.com)

  1. ‘알바’는 ‘아르바이트’의 준말로, 아르바이트의 뜻은 본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본문으로]
  2. ‘취업준비생’의 준말이다. [본문으로]
  3. 말동무를 구한다거나 ‘꿀알바’라며 올라오는 ‘모던바’, ‘토킹바’ 등의 일자리는 ‘착석 없음’을 내세워 건전함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업주가 착석을 강요하거나 스킨십이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일자리가 알바몬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 게시되는 것 자체가 문제로 지적된다. (“시작은 BAR, 끝은 룸…여대생 노린 꿀알바 유혹”, 스카이데일리, 2017. 08. 04.) [본문으로]
  4. 해당 인턴의 활동비는 월 1,745,200원이었으며, 2019년 최저임금은 월 209시간 기준 1,745,150원이다. [본문으로]
  5. 최근 알바몬 광고는 ‘알바도 능력’이라는 문구를 통해 알바를 하나의 노동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 잡코리아 광고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문구로 취업을 목표로 한 담론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6. “비정규직을 알려주마...30개 문답으로 담아낸 비정규직 이슈의 모든 것”, 중앙일보, 2017. 05. 19. [본문으로]
  7. 각주 6)과 같은 기사. [본문으로]
  8. 최저임금 인상 이후 노동시간이 짧은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오히려 확대되었다. (“노동시간 줄어든 비정규직, 정규직과 월급 격차 커져”, 한겨레, 2018. 04. 29.) [본문으로]
  9. “휴대전화 수리기사들은 왜 고객 전화기 스팸설정에 손댔나”, 매일노동뉴스, 2017. 02. 23. [본문으로]
  10.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1boon, 2016. 01. 04. 수정, 2019. 02. 21. 접속. [본문으로]
  11. 안전업무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외주화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노동환경과 고용 안정성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연속기고-간접고용 노동자가 본 외주화 실태 ①] 실적 압박에 쫓겨 내 몸 안전도 못 챙긴다”, 매일노동뉴스, 2017. 02. 09.) [본문으로]
  12. “팔다리 잘리고 감전되면서 일한 전기노동자 일자리까지 잃어”, 매일노동뉴스, 2019. 01. 16. [본문으로]
  13. “한국전력 협력업체 전기노동자 4천여명 18일 파업”, 매일노동뉴스, 2019. 01. 18. [본문으로]
  14. “콜센터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 개선해달라’ 인권위 진정”, 노컷뉴스, 2019. 01. 09. [본문으로]
  15. “‘혁신’이 짐되는 ‘하청업체’”, 참여와혁신, 2005. 11. 06. [본문으로]
  16. 홍사훈,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루비박스, 2017, 90–91쪽. [본문으로]
  17. “[겉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모호한 가이드라인으로 자회사 전환 남발, 처우는 제자리’”, 매일노동뉴스, 2018. 12. 12. [본문으로]
  18. “정규직 전환이 곧 좋은 일자리일까”, 매일노동뉴스, 2019. 01. 12. [본문으로]
  19. “50분 간 450문항 문제 풀지 못해 정규직 시험에서 탈락한 환경미화원”, 인사이트, 2019. 01. 11. [본문으로]
  20. “‘주휴 수당’ 포함 시켜 최저임금 산정 기업들은 반발”, SBS 뉴스, 2018. 12. 2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