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뭘 하고 사는지
"대체 뭘 하고 사는지를 모르겠어." 대형 강의실에 노교수의 성난 목소리가 울렸다. 그곳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다른 강의의 교재를 펼쳐두기도 했다. 대개는 수식과 문제풀이가 포함된 책이었다. 학생들은 표정 변화 없이 평온했다. 교수는 참았던 걸 터뜨리는 양 계속해서 화를 냈다. 왜 책을 안 읽냐고, 책도 안 읽고 뭘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유독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교수는 종종 '서울대 애들'을 찾았다.
대학생이 바쁘다고 한다. '다들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하다'든가, '다들 바쁘니까 빨리 하고 끝내자'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도서관에는 사실 특별히 사람이 없는 때가 없다. 뉴스에서도 책에서도 다들 말하기도 대학생은 이제 여유 있는 청춘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게, 대체 다들 뭘 하고 살기에 그렇게 바쁜가 싶은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도 전에 페이스북 직장란이 빼곡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봉사활동, 인턴십, 공모전 등을 비롯한 대외활동 정보가 유통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은 눈에 띄게 다양해지며 크게 성장했다. 실제로 대학생 943명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조사에서 70.5%가 대외활동에 지원해보았고, 두 명 중 한 명 꼴인 55.8%는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 대학생의 대외활동 참여율은 2013년 41.4%, 2014년 41.7%, 2015년 44.8%를 기록하며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공모전의 경우 전해 대비 17.3%가 급증한 37.1%의 참여율을 보였다. 기업 주관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 대학생도 39.9%에 달했다.
빈틈을 메워라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분석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거친 후 아이러니하게도 기업들의 이윤은 솟구쳤다. 2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기업들은 더욱 확실한 갑의 위치에 올라섰다. 사내 유보금이 아무리 넉넉해도, 그래서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기업은 없다. 3 경제가 어려울수록 노동력을 구하는 게 쉬워지기 때문이다. 불황은 인재를 값싸게 만들었다. ‘너 말고도 사람 많다’는 말은 삶을 최단기간에 최대출력으로 최대한 빈틈없이 살아내야 하는 ‘가성비’ 인간형을 탄생시켰다.
이들에게 가성비는 욕구를 값싸고 신속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계산법만이 아니다. 단순한 절약의 논리보다는 체화해야만 하는 삶의 방식, 자기 경영 논리이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구직인력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심화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준비해야 할 자질이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공백까지 늘어서는 안 된다. 가성비가 최우선의 가치일 때, 시간 공백은 낭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적절한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실패와 단 하루의 방황도 허락되지 않음은 물론이요, 이후 단계를 준비하는 공백기 역시 최소화하고 피치 못할 경우엔 감춰야 한다. 대학생에게 이는 졸업의 유예로 나타났다. 연세대학교에서는 5학년생이 2008년 7.5%에서 2012년 20%로 증가했다. 4 이와 더불어 시간을 겸사겸사 채워 넣는 테트리스 블록으로 활용되는 것이 인턴십을 포함한 대외활동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의 영광이 서린 공부 신화가 입시 경쟁을 지속해서 과열시켜왔다. 취업난 가속화가 기름을 붓긴 했지만 철저한 입시 경쟁 아래 길러진 지금의 대학생들에겐 이 조급함이 낯설지 않다. 대학생이 된 후 방학이나 휴학을 하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빈 시간을 가진다. 수험생활에 대한 보상심리도 잠시, 전처럼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을 강하게 느끼고 움직인다. 더군다나, 대학생은 대부분 언제나 적(籍)을 둘 곳이 있던 사람들이다. 유예 끝에 대학을 졸업하면 처음으로 소속 없이 공중에 놓이게 된다. 채워야 할 생산의 공백에 쫓기다가 소속의 공백으로까지 내몰린다. 인생에 빈틈이 없게 하려는 노력은 인력 과잉 상황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습관이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대외활동이 제공하는 유사 소속과 유사 명함으로 제도권을 비집고 들어감으로써 취업 등 이후 단계에 대한 불안을 달래는 일은 흔하다.
할 만큼 한 학생들, 학교를 나서다
직무능력의 기준선이 상향 조정된 데 비해, 많은 경우 대학의 직무 교육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특히 인문사회대는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교수의 길 외에는 학교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직업 교육이 없는 것과 같다. 공부를 위한 공부만을 할 수 있는, 아카데미아의 기능에만 저울이 완전히 기울어있는 것이다. 대학생이 과소공급 되던 과거에는 아카데미아의 교육만 받은 이들에게도 다양한 사회 진출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졸업 이후 단계를 자연히 전공 밖, 학교 밖에서 알아서 준비하게 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A는 “이제 학교에서는 내가 더 이상 찾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간을 이해하거나, 그런 데엔 도움 되겠는데, 전혀 나는 그쪽 연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나한테 전공 수업은 졸업하기 위한 요건에 불과해. 난 지금 학교생활과 취업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어.”
학교 이후를 또다시 준비해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학교를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할 만큼 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여기엔 ‘그러니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맞물린다.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학기가 끝난다면, 이미 성적이 만족스럽다면, 더 열심히 해도 남을 것이 없는 대학 공부는 사실 비효율의 영역이 된다.
학교 공부는 ‘할 만큼 했다’며 졸업 요건만을 세고 있는 A가 주로 하는 대외활동은 의외로 배움이 중점이 되는 활동이었다. 학교 안에는 기업이나 직무, 직군을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외부의 체험 활동이나 강연, 멘토링, 교육을 통해 그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업이 있더라도 대부분은 심화/선택과목으로 분류되므로 졸업 학점을 채우는 데는 보탬이 되지 못한다. 정해진 요건이 있는 대학 교육과정에서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자유롭고 넉넉하게 하는 것은 어려우며, 시간이나 자금 같은 현실적인 문제의 개입 또한 유의해야 한다. 그에 반해 대외활동은 부가적이고 자율적인 요소이다. 아예 하지 않든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든지 제한이 없는 것이다.
나의 실패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
성적표는 고칠 수 없지만, 대외활동 이력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도 대학생들이 학교 밖 활동에 열중하는 이유다. 앞서 지금의 대학생들은 실패할 여유가 없는 가성비 세대라 했다. 안전한 선택지를 두고 위험을 무릅쓰길 망설인다. 지울 수 없는 실패의 흔적을 남기느니 모든 과정이 모조리 수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택한다. 외부 활동은 성적표에 남을 만큼 중대하지 않은 대신, 망친 것은 없었던 양 숨겨버릴 수 있다. 대외활동은 함부로 실패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실패할 기회가 되어준다. 성공한다면 그 증표 또한 주어지는 건 물론이다.
실패했거나 부적합한 경력은 손쉽게 편집해버릴 수 있는 점을 이용하면서도, 대학생들은 연결성과 완결성을 단번에 갖추고자 했다.
“나는 많이 배우고 느낀 게 있는데 그건 ‘스펙’이 안 되잖아. 실패담이니까. 비슷한 고민 하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긍정적인 것만 말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넘쳐나니까 실패담은 숨기는 게 낫대. 결국엔 결과가 좋았어야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것 같아. 난 사실 스펙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 남는 게 없다고 얘기하는 게 그런 거 같아.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지만 남을지는 모르니까 하면서도 불안해.”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것보단 낫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쳐낸 편집의 결과가 공백이나 다름없거나 산발적인 방황의 흔적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건 가성비를 떨어뜨리는 무능을 상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다’. 빈틈없이 최적으로 살아내려는 노력을 다한 그 시간이 결국엔 무용한 허송세월이 되었다는 말이다.
A는 그래서 썩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님에도 “일단 첫 단추를 끼웠으니까 그쪽으로 가지를 칠 수 있다면 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미래의 자기소개서에다 ‘말을 만들’ 것을 상상하는 모습은 입시를 위해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중고등학생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대학의 쓸모를 찾다
대외활동이 대학교육을 일방적으로 대체하거나 보완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뚜렷한 대신 학교 공부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 왔다는 B는, 관련 대외활동을 섭렵하며 구체적인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B가 얻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느낀 공부의 필요성은 그를 대학 공부에 새로이 열중하도록 했다.
“영화제에도 부서가 많은데 작년에 활동하면서는 글 쓰거나 홍보하는 업무를 계속 배정받았어요. 어쩌다 보니까 감독, 배우 취재하고 상영작 리뷰 썼던 게 의도치 않은 단계에 오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보기만 많이 봤지 공부를 많이 한 편은 아니거든요. 그 자리까지 가다 보니까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대학 안에만 있어서는 삶의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외활동을 통해 삶의 다음 단계인 직업 세계를 배워 나가다 보면, 때로 전문지식의 필요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대학에 돌아와 학업에 열중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 대학보다 넓은 세계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시대가 불안하다고 한들 성공적인 취업만이 대학 생활에서 기대되는 전부는 아니다. 취업 외의 영역이라 해서 대학 교육을 성실히 이수하는 것으로 그 기대가 모두 충족될 리도 없다. 얼핏 취업을 이유로만 행해지는 것 같은 대외활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외활동의 장점을 물으면 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이가 태반이다. ‘대외’활동이니만큼 당연해 보이는 대답이지만 의외로 이 모호한 장점은 대학생들이 대외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들이 대외활동에 기대하는 것 역시 취업 준비만이 아닌 것이다. 대외활동엔 일종의 낭만에 대한 추구를 합리화하는 기능이 있다.
매분 매초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세상 경험조차 무작정 혹은 혼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 밖에서 기업의 지원을 받아 명찰을 달고 이것저것 겪어본다는 것은 대학생 개인에게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이 같은 수요가 있어서인지 예전에는 대외활동이라는 틀 밖에서도 흔히 하던 일들이 대외활동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기업 주관의 봉사활동, 국토 대장정, 해외 탐방을 비롯해 직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온갖 체험 활동이나 대회 등등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서 기업은 일괄적인 커리큘럼과 증명서류를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정당한 명분과 소속이라는 학교의 기능을 재현한다. 이렇게 실현된 낭만은 반쪽짜리에 가까우며, 안전한 다양성이란 결국 모순이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대외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C는, 대외활동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다양성에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솔직히 한국에서 제도권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나 경험은 되게 적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더 다양했고, 나한테 더 신선한 충격을 줬고,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도 그렇고. 제겐 아르바이트하는 게 다른 사람들 만나서 소통하는 방법이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안 했던 것 같아요.”
어느새 ‘남들 다 하는 거’가 되다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대외활동이 여러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떤 대학생들은 나부끼는 포스터와 현수막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시험 준비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라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겠다는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인 D는 대외활동에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 그 실효를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1, 2학년일 때만 해도 대외활동 하는 애들이 소수였고, 그런 애들의 전형적인 상이 있었어. ‘인싸’ 느낌에 평판이 좋고 자기관리 잘하는 애들. 대외활동은 저런 애들이 전유하는 것이구나.”
시간이 흘러 주변에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D 본인도 대외활동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이런 인상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멋진 일이기만 한 것도, 참여하는 학생들이 멋진 생각만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당연히 하기 싫고 귀찮다’ 등의 허무한 감상마저 흔했다. 큰 기대를 하고 시작한 기자단 활동이 담당자 한 명의 재량에 크게 휘둘리는 것을 보고는 방향을 틀기로 했다.
“저런 거 해서 뭐가 도움이 되나. 내가 스스로 책 읽고 면접에서 말 잘하는 게 낫지. 오히려 대외활동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느꼈어. 언론사 준비하는 거 자체가 좀 다르잖아. 학점도 그렇고 정량적인 스펙이나 경력이 중요하기보단 말을 잘해야 하고 ‘자소서’를 잘 써야 하고. 미련이 없어졌어. (그래서) 아예 노선을 갈아탔어. 필요한 것에 맞춰서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 글 모임, 책 모임을 만들었어. 선배 언론인들이 그러더라고. 남들 다 하는 거 안 할수록 좋다고. 너희 하고 싶은 거 하면 그게 스펙이란 말도 많이 해.”
언론사 취업의 특이점은 차치하더라도, 기업 주관의 대외활동이 정작 그 취업에 유의미하지 않다는 의견은 대외활동의 성장세에도 꾸준히 있었다. 대학 시절 대외활동에 활발히 참여한 직장인 E는 “스펙에도 트렌드가 있”음을 강조하며, 봉사활동이나 대외활동은 지난 유행이라고 했다. 실제로 기업 입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고학년 학생들은 전형적인 대외활동을 하기보다는 전략경영학회, 실전 창업학회, 마케팅전략학회, 기업분석학회 등 온갖 학회로 모인다. 이렇게 모여서 공모전과 창업 등 ‘트렌디한’ 스펙을 쌓는데, ‘남들 다 하는 거’가 된 대외활동을 대신하기 위해 또 다 같이 움직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옹호 받아야 할
대학생이 바쁘다. 학교 공부는 요령껏 하고 시간표 밖을, 학교 밖을 바삐 돈다. 누군가는 이들을 보고 잔꾀를 쓴다고 아니꼬워하고 누군가는 미래에 저당 잡혀 사는 것이냐며 안타까운 양 혀를 찬다. 그중엔 여유 없는 자신을 자조하는 대학생도 있다.
대학생들이 대학 밖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채워가는 모양은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각박한’ 것일까. 대학생의 본분이라는 학문에 대한 배신일까. 아니,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으로 현재를 채우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해내는 일이, 젊음의 본분인 도전을 해내는 일이 이보다 우선할 수 없다. 대학생에게 마냥 철없이 굴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상당히 잦아들었지만, 그 빈자리를 만만찮은 연민과 동정이 채웠다. 그러나 1인분의 몫을 해내기 위해 각자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이들을 왜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처럼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함부로 다그쳐선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재미없이 살아 어쩌느냐고 함부로 안쓰러워해서도 안 될 것이다. ‘취업이 어려워져서’라는 말은 껍데기일 뿐 본질은 이다음 내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층 불안해진 현실을 덮어놓고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 흔들리는 삶을 살아내는 이들을 응원할 수는 있다. 함께 흔들리는 존재로서 부디 모두의 삶에 건투를 빈다.
지인 (jiinlee2006@gmail.com)
- 「대학생 대외활동 참여실태 및 인식 조사」, 대학내일20대연구소, 2017.2., (https://20slab.naeilshot.co.kr/archives/19905) [본문으로]
- Paul Krugman, Why Corporations Might Moderate Depression, 2013.12.25.,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나해리 외, 길벗, 2014, p. 410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앞의 책, p. 411. [본문으로]
- 『공부중독』, 엄기호·하지현, 위고, 2015, p. 2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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