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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편집위원회
사회

<114호> 당신은 '소녀'를 '지킬' 수 없다 - 위안부: 민족, 가부장, 그리고 보급품으로서의 여성 ①_편집위원 서영

by yonseiji 2025. 12. 17.

지난 추석 연휴 한 남성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논란이 되었다. “나 큰일날 짓을 했다”는 글과 함께, ‘평화의 소녀상’의 목덜미를 잡고 뺨에 입을 맞추는 포즈로 촬영한 사진이 게시된 것이다. 사진이 찍힌 장소는 대구 2.28 중앙공원이었고, 대구시민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불같이 화를 냈고, 소녀상을 찾아가 뺨 부위를 알코올로 닦아 소독하기도 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2016년 9월 세종시 호수공원 소녀상에 올라타 얼굴을 끌어안고 뺨에 입 맞추던 남학생도, 2017년 2월 소녀상의 입술을 혀로 핥으며 찍은 ‘셀카’를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게시한 남성도 있었다. 특히 이 남성은 “같은 국민의 아녀자 입술은 같은 국민 남성의 것이지 외간남자에게 빨리는 건 치욕”이라는 말과 함께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다시 이런 참극이 빚어지지 않기 위해 정조관념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2014년 3월 자신을 디자이너라 밝힌 한 남성이, 기모노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리고 가슴을 노출하는 자세로 변형시킨 소녀상 이미지에 ‘sexy lady’라는 이름을 달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했다.

물론 소녀상을 훼손하고 모욕하는 일은 지금껏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왜 하필 ‘이런 식의’ 장난질인가. 단지 이들 남성 개개인의 무식함과 저열함 탓인가. 이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역사의식이 없다거나 철없는 장난기 때문에 빚어진 일종의 해프닝은 아닐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위 사건들 범인의 저의가 궁금하여 출발하였고, 관련 자료를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내용과 고민했던 지점을 정리하며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소녀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위안부’ [각주:1] 문제가 갖는 의의를 되짚어 보며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Ⅰ. 소녀상, 기억하겠습니다?

전국 평화의 소녀상 릴레이

 피해자의 직접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한국사회에 공식적으로 제기된 지 올해로 27년째다.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투쟁은 이어지고 있으며, 그에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이하 2015 합의) [각주:2] ’ 에 대한 재협상 요구도 더해지게 되었다. 그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필두로 한 각종 단체의 활동과 지원이 있었고, 그 덕에 이제 ‘위안부’ 문제는 한국에서 ‘기억해야 마땅할 사건’으로 자리했다.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사회운동의 양상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의 대중적 영화나 드라마 제작부터, SNS를 기반으로 한 캠페인까지 각양각색이다. 모바일 기기 확산과 네트워크망의 폭발적 확장은, 수용자로만 존재하던 수동적 개인들이 메시지와 담론을 이끄는 적극적 개인들로 변화하게끔 했다. ‘위안부’와 관련한 활동들도 ‘기념 사업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에는 수요집회와 피해자를 위한 직접 모금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면, 최근에는 ‘위안부’와 관련한 영상 콘텐츠, 굿즈(goods) 판매,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및 각종 크고 작은 단체들의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전달하고 알리는’, 그를 통해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기념사업의 기조와 자연스레 맞닿게 된 것이다. 우리가 ‘위안부’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십 대 소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그와 같은 기념사업들이 남긴 잔상의 종합이다.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방한용품과 과자, 핫 팩이 놓여 있다.



최근 가장 강력한 대표 이미지로 부상한 것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5 합의’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이 소녀상 이전 혹은 철거가 마치 10억 엔 출연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굴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는 소녀상을 세우는 행위에 일본에 대한 대항의 의미를 투영하게 되었다. 현재 전국에서 소녀상 세우기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시, 군, 구 지자체를 중심으로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카드뉴스나 웹자보 등의 홍보물을 제작한 뒤 SNS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금 활동을 벌이는 방식이다. 전국 100개 중•고등학교에 100개의 소녀상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은 소녀상 세우기 운동’이나, 특수 제작한 소녀상을 버스에 태워 시민들과 만나도록 하는 이색 퍼포먼스도 몇 개 시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추석에는 귀성길 시민들의 차에 소녀상을 태워 지방으로 보내는 ‘귀향 프로젝트’도 있었다. 몇 개 대학에서도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이 있었고, 우리 학교에서도 모 교수가 수업 중에 ‘소녀상을 세우고 소녀상과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일이 있었다. 과연 소녀상 건립 문제는 ‘일본의 사죄 촉구’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듯하다. 그 결과, 2017년 11월 현재 국내에 80여 개, 해외에 8개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중•고등학교 내 작은 소녀상도 155개째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디에 몇 번째 소녀상이 세워졌더라’는 소식이 포털 사이트의 ‘위안부’ 관련 뉴스란을 가득 채운다. SNS에는 소녀상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이 차고 넘친다. ‘#remember’ ‘#가슴아프다’ ‘#소녀상’ ‘#잊지말자’ ‘#할머니들힘내세요’ 등의 해시 태그와 함께.

소녀 이미지를 내세운 ‘마리몬드’나 ‘희움’과 같은 브랜드의 가방, 옷, 액세서리, 휴대폰 케이스 등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나 동아리에서 제작해 파는 디자인 상품도 많이 생겼다. 그 덕인지 ‘위안부’를 네이버 검색 창에 쳐넣었을 때 자동완성 가장 상단에 ‘위안부 팔찌’라는 키워드가 뜨며, ‘위안부 핸드폰 케이스’와 ‘위안부 배지’또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연예인 아무개가 ‘위안부’를 돕는 액세서리를 착용해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인기 스타의 인증 이후 브랜드 홈페이지가 마비되거나 물건이 동나는 일도 있었다. 일부 팬덤에서는 ‘조공’품목에 ‘위안부 굿즈’를 일부러 넣어 좋아하는 연예인이 개념 연예인이 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위안부’를 주제로 한 이벤트나 캠페인도 다양하다. 기업이 주체가 되어 해당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면 자동 기부되는 이벤트나,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콘서트나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요즘은 중고등학교 역사동아리를 중심으로 교내 소녀상과 함께 퀴즈대회를 하거나, ‘소녀상데이’를 지정해 ‘위안부 할머니’에게 다 같이 편지를 쓰거나, ‘위안부’로 운을 띄워 삼행시를 짓거나, 소녀상 혹은 ‘할머니’를 그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캠페인이 자주 벌어진다.

‘마리몬드’는 화장품이나 패션 브랜드와 여러 차례 콜라보를 진행했다. 위 사진은 ‘마몽드’의 꽃라보레이션 수분 크림.
'마리몬드'와 ‘어퓨’의 ‘파스텔 블러셔 컬렉션’.

 

‘평택청년회’의 소녀상 미니블록

 

‘소녀해방단’의 소녀상 배지



 무한 기념사업의 역설                         
        
너도 나도 경쟁하듯 소녀상을 세우고 각종 캠페인이 개최되고 굿즈가 판매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끔은 소녀상이 일종의 개념인증 마크처럼 쓰인다는 느낌이 든다. 굿즈를 사용하고 소녀상을 방문하는 모습이 ‘전시’된 수백 개의 블로그나 SNS 게시물을 보면서, 간혹 그것이 ‘깨어있음’이라든가 ‘역사의식이 있음’이라는 이미지를 간편하게 얻는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편한 감정마저 든다. 날이 추워지면 소녀상에는 어김없이 담요와 목도리, 털모자가 둘리고 주변에는 꽃다발, 핫팩, 과자, 화환 등이 놓인다. 소녀상에 찾아와 기도하거나 절을 하는 시민도 있다. 작은 소녀상을 들고 일본국토를 종주한 청년이나, 전국 소녀상 초상화 그리기 투어를 떠난 청년의 감동 스토리는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각종 선거운동과 국가 기념일에 정치인들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소녀상을 즐겨 찾는다. 지난 대선에서도 몇몇 후보들이 각 지역 소녀상을 찾아가 헌화하거나, 우산을 씌워주고,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을 연출하며 소녀상을 ‘참배’했다. 소녀상 참배와 헌화와 묵념, 그리고 사진 찍기는 나와 나의 주변인들에게 쉽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왜 소녀상은 찾으면서 정작 실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나눔의 집’은 찾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어떤 피해자는 나눔의 집을 찾은 모 후보의 앞에서 “꼭 이런 행사가 있어야만 여러분이 우리를 찾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용할 때는 안 오고 급박하니 찾아온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각주:3] 올해 초 경기도의회에서 추진하기 시작한 ‘독도 소녀상 세우기’ 운동에 대해 피해자들과 나눔의 집 측은 ‘독도 문제와 정치적으로 엮지 않았으면 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 달라’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각주:4]

현재 ‘세계로 뻗어 나가는 소녀상’이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소녀상을 세우고, 환호하고, 기사를 내는 과정에서, 때로는 더 많은 소녀상을 세울수록 문제 해결에 더 가까워진다는 착각이 발생하는 것 같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자의 정의감을 입고, 소녀상을 세우는 행위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그 자체인 것처럼 여기는 일종의 주객전도다. 피해자가 아닌 소녀상을 애지중지하고, 소녀상을 위한 이벤트를 벌이는 과정에서 소녀상은 마치 모으기만 하면 저절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드래곤볼처럼 취급된다. ‘일본에 맞서 꿋꿋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녀상을 건립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이미지에 매몰될수록, ‘한국이 뭐만 하려면 방해하는 일본’을 주적으로 내세우고 미워할수록, 현실의 위안부 문제에서는 가려지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과거청산에 있어 “실질적인 구제보다는 피해자들을 무마하고 기념사업을 벌이는 데 치중한다는 점에서 낮은 수준의 정의를 구현” [각주:5] 하는 경향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방식의 기념사업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가 되풀이된다. 이 또한 그냥 보면 꽤나 따스한 말이나, 어찌 보면 되풀이될수록 수동적 타자의 위치에서 안주하는 말이다. 기억하기 위한 콘서트, 기억하기 위한 배지, ‘기억하기 위한… 기억하기 위한…’ 은 수도 없이 반복되지만, 강한 술어에 비해 목적어는 희미하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어쩌면 나아갈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수동적이고 유약한 속 없는 메아리다. 캐주얼하고 고민 없는, 잠시 편리한 공감만을 내주고 벗어날 수 있는, 딱 그런 만큼의 관심만 지불하는 것이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꼭 기억할게요’라는 감상적인 말 한마디나, ‘일본은 정말 나쁘다’는 식의 간략한 비난에서 그친다. 다음 단계는 없다. 빼앗겨 버린 맑고 예쁜 소녀 시절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문제를 ‘알린다’는 취지로 무한정 기념사업을 벌이는 일은 언제까지 지속하여야 할까. 이에 대한 이야기는 글의 뒷부분에서 마저 이어진다.

미안해, 순결한 민족의 소녀에게

위와 같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위안부’ 서사는 소녀상에서 시작되어 소녀상에서 끝난다. 왜 2017년의 피해자가 아닌 ‘과거의 소녀’를 내세우게 되었을까. 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책임회피를 위해 씌운 이미지는 두 가지 [각주:6] 였다.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반인륜적 성노예’로 규정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책임과 사죄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졌고, 그를 경계한 일본 신 우익 세력은 ‘웃으며 돈을 받는 매춘부’ 이미지를 내세운다. 가부장 사회에서 매춘부로 규정된 여성에게는 어떠한 짓을 해도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기에, ‘위안부’를 매춘부로 낙인찍으면 가해자는 ‘강간범이라는 오명’에서 가뿐히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낭만적 사랑’이다. ‘위안부’는 국가의 공식 기억에서는 배제되었으나, 패전 후 군인들의 전장 체험 기록이나 많은 일본 영화, 대중문화 속에서 향수적이고 찬미적인 어투와 함께 전장의 아련한 추억 일부쯤으로 기록되었다.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천사와 같은 존재로 추앙됨과 동시에 ‘자발적 위안’을 제공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멋대로 미화된 것이다. 남성 시각에서의 낭만적 사랑, 혹은 연애감정의 서사는 예나 지금이나 성폭력을 지우는 효과적인 재료다.

‘돈 받는 매춘부’와 ‘낭만적 사랑’. 비하와 찬양의 양극단이지만 둘 다 ‘자발성’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까지도 꾸준히 다양한 성폭력 사건들마다 “왜 완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 “네가 받은 건 ‘화대’이지 않냐” “너도 좋아하는 감정이 있지 않았냐” “너도 즐기지 않았느냐” 등,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온갖 언어 폭력 속 레퍼토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따라서 소녀상은 그러한 주장에 대한 반대기제로서 탄생하게 되었다. 매춘부 여성으로도, 낭만적 사랑의 대상으로도 투영할 수 없는 단정하고 꼿꼿한 무표정의 소녀상은 의도적으로 섹슈얼리티와 거리를 둔다. 순수함, 순결함의 이미지를 내세워야 자발적 성매매가 아닌 완전한 성폭력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 선상에 위치하는 ‘강제로 끌려간 소녀’만이 민족의 아픔 서사를 흠 없이 완성할 수 있다. ‘위안부’가 처음부터 소녀 이미지로만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 위안부 문제가 담론화된 이후 제작된 관련 영화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극영화의 형식으로 제작된 세 편의 영화인 <소리굽쇠(2012)>, <마지막 위안부(2015), <귀향(2016)>은 모두 평화의 소녀상 이후에 제작된 것이며 그 주인공들은 모두 ‘소녀’이다.” [각주:7] 그렇게 보호받아야 할, 그리고 보호하지 못해 미안했던 ‘민족의 소녀’가 완성된다.

그러나 소녀 이미지를 내세움과 함께 강화되는 정조와 순결은, 일본이 주장하는 ‘자발적 위안’과 정반대에 놓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같은 여성 혐오의 선상에 있다. 정조와 순결을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화하는 잣대는, ‘소녀’가 지워졌을 때 언제든 쉽게 섹슈얼리티를 드러내 버리고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시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남성들의 소녀상 성희롱이나, 몇몇 이들의 ‘은연 중의 말실수’는 이를 너무나도 잘 드러낸다. [각주:8] 또한 효과적으로 공감을 끌어내고자 강조되는 문구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라거나 ‘짓밟힌 순결’, ‘꺾여버린 꽃’ 등은 흔히 성폭력 피해자에 멋대로 부여되는 캐릭터와 맞닿아 있다. 피해자는 극복하려 애쓰는데 주위에선 수치심을 강요한다. 이는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형태의 특수한 폭력이다. 앞서 언급한 키스 테러 사건에서 대구시민들이 소녀상을 알코올로 닦아 ‘더러워진 몸’을 소독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소녀상을 내세울 때, 무의식적으로 ‘꽃 같은 젊음과 순결을 빼앗긴 가엾은 소녀’에 대한 안타까움의 감정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가.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서영(oksusu.lover@gmail.com)

 

  1. 초기에는종군위안부’, ‘정신대’, ‘성노예’, ‘처녀공출등 용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혼란이 있었다. 일본군에서 사용된위안이라는 용어는 철저히 가해 남성의 시점을 담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것이 가해의 주체를 명확히 하며 용어가 배태된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판단했고, 따옴표(‘’)를 붙여 ‘(이른바)위안부라는 표기로 통일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2. 2015 12 28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공포한 내용으로, 공식 문서 없이 보도자료만 존재하는 불분명한 성격의 합의이다. 일본 측 입장의 주요 내용은책임을 통감하고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며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의 예산 10억 엔을 거출하는 것이다. 한국 측은 이에 대해이번 발표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임을 확인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한 적절한 해결추후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를 표명하였다. 전문은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http://www.mofa.go.kr)·일 외교장관회담 결과(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다. [본문으로]
  3. 유승민집권하면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추진’”, 뉴스1, 2017. 05. 06. [본문으로]
  4. 광주나눔의 집할머니들, 경기도의회 추진독도 소녀상반대”, 중부일보, 2017. 01. 23. [본문으로]
  5. 4·16 이후, ‘애도의 정치의 새로운 양상들」, 『황해문화』 제93, 정원옥, 2016, p. 284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위안부=‘소녀상과 젠더」, 『동아시아문화연구』 제66, 최은주, 2016, pp. 246–252. [본문으로]
  7. 최은주, 2016, p. 254. [본문으로]
  8. 대표적으로 방송인 김구라 씨의정신대 망언이나, 순천대 모 교수의 “(‘위안부) 끼가 있으니까 따라갔다는 발언, 광주 모 여고 교장이 학생들에게슬픈 역사만 홍보하다가는 너희도 위안부처럼 된다고 발언한 일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