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평화 올림픽으로!
17일 동안의 평창 올림픽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아라리요 평창’을 비롯해 크게 주목 받았던 개·폐회식의 ‘인면조’까지, 이번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끝까지 숱한 화제와 이슈를 낳았다. 많은 사람들이 국정농단, 채용비리 등 부정과 불의에 지친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올림픽이 ‘평화의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며 더 나아가 “치유의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 . 확실히 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을 기치로 한 국제 스포츠 대회다. 개·폐회식에서 웃으며 등장하는 각국의 선수들, 평화를 기원하는 춤과 노래로 이루어진 무대를 보고 있으면 올림픽 기간만큼은 휴전(Olympic Truce)을 선언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떠오른다. 올림픽이 ‘축제’라는 점에서 경기를 통해 감정적으로 격앙되고 그 속에서 재미와 자유를 느끼는 축제적 성격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즐거움과 격의 없음을 바탕으로 소통하지 않았던 이들이 편견 없이 대화하고 서로 이어지길 기대하기도 한다. 축제의 장에서 만큼은 국가 간 분쟁을 막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 프로파간다 홍보를 금지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방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한 ‘평화 올림픽’은 한반도기 사용, 남북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독일 동서 단일팀 등 분리된 국가의 화합에서만큼은 정치에 대한 예민함을 보류했던 IOC는 이번 한반도 남북의 화합 역시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사실 올림픽만큼 나의 ‘소속’을 체감하게 하는 행사도 없다. 평소엔 국내 현실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도 태극 마크를 새기고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선수들을 보면 본인도 모르게 team Korea가 되어 응원하곤 한다. 올림픽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 역시도 이왕이면 한국이 이기길 바라기 마련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국가와 민족으로 강력히 귀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는 만큼 올림픽 이슈에 대해선 한 개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대응하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평창 올림픽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한국인’으로서 올림픽 이슈에 대응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화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 사회 내부에 오래도록 있어왔던 갈등과 새로운 갈등의 지점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평화, 그리고 치유의 올림픽’은 우리의 병든 인식을 바로잡고 선수의 노력과 이를 통한 성취에 박수를 보내는, 축제를 그 자체로 즐기려는 자세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평화올림픽? 평양올림픽?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올림픽’ 키워드는 곧바로 정치적 논쟁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통령이 언급한 올림픽의 평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기의 사용, 개·폐회식 때 남북 선수의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성 등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지자 항간엔 행여나 북한이 이를 외교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까 걱정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발표한 시점까지도 한반도의 국제 정세는 살얼음판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대북제재의 기조와 상충해선 안 됨을 거듭 강조했다 2 . 북측 문화공연을 위해 북한 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하고 이 사실이 일제히 화제가 되면서 올림픽에 대한 북한의 입김은 점점 더 커지는 듯 보였다. 제1야당은 신속히 공식 석상에서 ‘평양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평창 올림픽을 평가절하 했다. 올림픽을 통해 ‘평화’라는 이미지를 북한이 얻어 가고 그것을 현 정권이 도왔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친문성향 네티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여 ‘평화올림픽’을 각종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들도록 하였다. 이를 본 반문성향 네티즌들 역시 ‘일베’를 중심으로 ‘평양올림픽’을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렸다. 각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엔 평양올림픽과 평화올림픽이 동시에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3 .

평양올림픽 등 논란이 계속되면서 광화문은 극우단체의 시위 행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수 야당이 주조한 ‘평양올림픽’이 적힌 피켓을 든 그들은 서울 도심의 도로를 점령한 채 맹렬한 기세로 문재인 탄핵을 외쳤다. 그들은 광화문을 지나는 보행자들에게 “멸공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북한의 올림픽 참여라니 ‘문죄인’은 탄핵을 당해 마땅하다”며 시위의 당위를 설파했다. 극우단체는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는 보행자들을 불러 세웠고 시위를 비판하는 보행자들에겐 위협적으로 욕설을 뱉었다. 광화문에서의 태극기 행렬이 박근혜 지지자를 비롯한 장년층 혹은 노인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올림픽 개막 초기 뜨거운 감자였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은 청년층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특히 이 문제는 국내 정치 진영 간의 갈등에서 나아가 북한 문제에 대한 세대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 명확히 보여주었다.
2017년 그리고 현재, 20대는 취업난을 겪는 동시에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채용비리를 보았고, 정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를 목격하였다. 부조리 청산을 약속하며 문재인 정부가 수립되었고 정부의 행보는 약속을 지키는 듯 했다. 그러나 남북 단일팀의 결성은 새 정부가 약속한 정의의 승리, 평등한 기회의 실현이라는 가치와는 모순되어 보였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단일팀 결성 소식을 접한 시기는 1월 12일, 올림픽 바로 한 달 전이었다.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갑작스럽게 단일팀 결성 추진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월 12일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을 알게 된 것이다 4 . 설상가상 단일팀에 대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16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거나 하지는 않”으며 북한 선수들을 투입해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선수들 역시 동의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특히나 메달권에 있지 않다는 표현은 많은 이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낙연 총리는 19일, 발언의 본 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사과하였지만 5 국민들, 특히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청년들로부터 반발을 사기엔 충분했다. 국가의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 기회의 박탈, 그리고 이를 너무나 간단한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정치·제도권의 행동 방식에 큰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18일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이민지 선수는 “어떻게 기회의 박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단일팀 결성에 대한 불만을 인스타그램에 드러냈다. 이는 아이스하키팀 선수 사이에서도 갑작스러운 단일팀 추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던 첨예한 갈등 – 북한을 활용한 진영 간의 갈등 - 을 가시화하였다. 보수 정치 세력은 6·25 세대의 전쟁 공포를 활용해 철저한 반공의식을 재차 되살렸고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북한의 참가를 빌미로 정치공세를 이어갔다. 평창올림픽이 북한 체제 선전의 장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나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는 이와 동일선상에 있다. 남북 분단이 민족상잔의 비극이며 통일이 그것의 해답이라 배워 온 청•장년 세대는 ‘뭣도 모르고’ 멸공을 외치는 노년층에 분노했다. 전쟁을 겪지 않았던 그들의 눈에 노년층은 보수정치세력의 정치공작에 놀아날 뿐인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발단이 된 격렬한 태극기 집회는 북한이 정치 진영을 가르는 낡은, 그러나 여전히 건재한 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대 간의 인식 차이는 비단 청•장년 세대와 노년층 사이에만 있진 않았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은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의 인식 차이 역시 뚜렷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은 통일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세대다. 그들에게 통일은 보통 민족 화합의 길이자 먼 미래에 이뤄야할 궁극적 목표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개인’이 강조되어 온 문화 속에서 자란 청년층은 그 당위성에 회의적이다. 전쟁과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도 없고, 분단 상황에 익숙하게끔 자라왔던 그들은 분단된 현 상태에 큰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은 우리,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 폭력적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통일’, ‘북한 문제’에 대한 세대 간의 입장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족 화합과 대의’를 명분으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한 것은 청년 세대에겐 굉장히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단일팀 문제는 분단 현실에 대한 세대 간의 현격한 시각 차이를 뼈아프게 느끼게 했다.
약소국 콤플렉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의무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적자라면 식민국가 시절 동안 당했던 설움과 불이익을 익히 배웠을 것이다. 열강들 사이에서 치이며 한국은 세계사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 보였지만 경제 발전을 발판으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 아래 존재감을 세계에 증명하고자 하였다. GDP 규모 11위라는 OECD의 경제 지표는 훈장이 되어 강조된 지 오래고 삼성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국가의 자부심이 되었다. 국가의 위상을 높여 국제적·외교적으로 발언권을 얻는 것은 자국민의 이익 측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적 인정에 대한 이러한 욕구는 약소국 콤플렉스와 맞닿아 보인다. 국제무대에서 받게 되는 약간의 불이익, 혹은 불이익처럼 보이는 현상에 굉장히 민감하며 힘이 약하기에 불이익의 대상이 된다는 피해의식이 언제나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MBC every1의 인기 예능으로, 채널 최고 시청률을 거듭 경신하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방송인이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와 한국을 여행시켜주고, 이를 한국인 패널들이 보며 코멘트 하는 형식이다. 때문에 한국 문화를 접하며 보이는 외국인들의 리얼한 반응은 많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은 비단 외국인의 신기한 반응에만 있진 않았다. 오히려 주요한 요인은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향한 애정과 부러움을 드러내고, 한국인 패널은 – 시청자는 한국인 패널들에게 이입한다 - “그렇지~” 맞장구치며 기특해하는 일련의 과정에 있었다. 시청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출연 외국인은 한국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기 힘들다. 여행 자체가 방송국 지원금 덕분이고, 자신의 친구가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로빈 데이아나가 출연한 프랑스 편은 너무 솔직한 반응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다. 로빈의 친구들은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했고, 따뜻한 카페 라테를 시킬 땐 ‘핫’이 아니라 ‘오뜨’(‘뜨거운’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표현했다. 이외에도 프랑스의 위상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여행이 진행되자 자문화 중심주의가 아니냐며 크게 비난 받고 말았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외국에선 한국의 이미지가 어떨지 궁금할 때가 있다. 또한 음식이 안 맞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 시청자에게 이 프랑스인들의 솔직한 반응은 선진국 우월감에 도취된 듯 보였고, 상당히 비위에 거슬렸던 것이다. 로빈의 친구 중 한 명인 마르빈은 인스타그램에 줄을 이은 한국인들의 비판에 사과했고 방송인 로빈 역시 한국 네티즌들과 인스타그램에서 설전을 벌이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갑자기 예능 프로 설명을 해서 당혹스러운 혹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예능 프로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고 곱씹어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바로 한국인들의 감수성 기저에 흐르는 은근한 약소국 콤플렉스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약소국 콤플렉스는 외부인에 대한 배제와 억압, 더 나아가 자기 영웅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어 위험하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몰입하는 올림픽에선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쇼트트랙 여자 500m 경기 후 최민정·킴 부탱 선수의 일화와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국내외에서 모두 화제가 되었다. 해당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였던 최민정은 한국 쇼트트랙 500m 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잦은 부딪침이 있었고 3위로 골인한 최민정 선수는 비디오 판독 후 실격 처리를 당하고 말았다. 오히려 그와 신체 접촉이 있었던 캐나다 선수 킴 부탱이 동메달리스트가 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실격 처리에도 모자라 최민정 선수가 아쉬움의 눈물을 보이자 수많은 네티즌은 소치 올림픽의 김연아를 떠올리며 실격 처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비디오 판독 담당자가 일본인·서양인뿐이라며 로비 의혹을 제기한다거나 아무리 봐도 킴 부탱 선수의 실책인데 오판이 아니냐는 판단 기준에 대한 의심까지, 최민정·킴 부탱 선수 사건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문제는 킴 부탱 선수의 SNS에 테러가 가해졌다는 사실이다. 살해 위협과 욕설, “dirty medal” 등과 같은 한국인들의 악플 테러로 킴 부탱 선수는 SNS를 비공개 전환하고 그의 아버지는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후의 경기에서 킴 부탱 선수는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최민정·킴 부탱 선수의 일화는 앞서 언급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논란과 사건의 본질이 비슷하다. 최민정·킴 부탱 선수의 일화도 여지없이 약소국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선수가 3위로 골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판정으로 메달을 ‘빼앗긴’ 것은 불합리하고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비디오 판독과 심판에 대한 신뢰가 지워진 지는 오래다. 지속적인 불신은 국제 스포츠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라는 서러움과 동일선상에 있다. 마르빈 인스타그램 사건과 킴 부탱 인스타그램 테러 사건은 무시당했다는 느낌과 이에 대한 맹렬한 분노, 즉 약소국 콤플렉스의 표현이다. 이는 더 나아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자극했고 곧 바로 국제사회에 보이는 한국의 이미지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잘 사는 나라, 강한 나라, 경제력에 걸맞은 매너와 격을 갖췄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한다. 이는 킴 부탱 인스타그램 테러에 대한 네티즌의 양분된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논란이 된 경기 직후엔 킴 부탱 선수와 판정 결과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사이버 테러가 일어나자 도가 지나쳤다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이버 테러에 대한 비난 여론 역시 건강해보이진 않았다. 사이버 테러 자체·경솔한 비판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고, 이번 사건 때문에 손상될 한국인 ‘이미지’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외신에도 소개되고 싶으면 계속 욕을 해라” 6 등 수많은 댓글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국제사회에 한국의 ‘격 떨어지는’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염려뿐이었다. 킴 부탱 사건에 대한 생산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언론은 한술 더 떠 오히려 킴 부탱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도록 부추겼다. 500m 이후의 경기에서도 킴 부탱과 최민정은 지속적으로 라이벌로 엮였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최민정과 경쟁 구도에 있었음에도 중계방송은 킴 부탱과 최민정의 전력 분석만을 주요하게 소개하는 식이었다.
경기 결과의 극적인 반전에 속이 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인지상정의 감정이다. 억울한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는 행동 역시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약소국 콤플렉스에 기반한 습관적 불신과 기형적인 분노 표출, 자기 태도에 대한 반성의 부재는 위험하다. 오랜 불이익의 역사 때문에 피해의식이 생겼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핑계로 지나친 분노를 정당화하는 게으름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외국 출신 방송인이 한국을 숭배하지 않으면 방송계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 당장 하나의 예다. 유럽, 미국과 같이 소위 말해 한국 보다 잘 사는 국가 출신의 방송인은 “독도는 한국 땅”처럼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사랑받는다. 약소국 콤플렉스의 기형적 발현은 자문화 중심주의와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힘의 우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타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때의 외국인 타자란 소위 말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출신인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미디어에선 심심치 않게 연변 사람들을 미개하고 폭력적으로 묘사하며 그들과 싸워 이긴 한국인을 영웅으로 격상시킨다. 약소국 콤플렉스가 계속해서 기형적으로 발현된다면 우리에게 축제로서의 올림픽은 실현 불가능하다. 피해의식 속에서 올림픽은 더 이상 재밌는 오락이 아니라 서러움과 분노, 마녀사냥의 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염려했듯이 킴 부탱 사이버 테러 사건은 실로 우리의 창피한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국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발현될 때 얼마나 폭력적이고 배타적일 수 있는지를 말이다.
잠깐, 이대로 끝?
평창올림픽이 끝을 향할 즈음, 대부분의 이슈를 한 번에 덮을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불거진 왕따 의혹, 이른바 ‘김보름 논란’이다. 김보름·박지우·노선영이 함께 한 여자 대표팀은 2월 19일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7위에 그쳐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논란이 된 것은 탈락이 아니라 경기 도중 보여줬던 팀워크와 이후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마지막 주자의 기록이 팀의 기록이 됨에도 불구하고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뒤처지는 세 번째 주자 노선영 선수를 이끌지 않았다. 두 선수는 오히려 막판 스퍼트를 냈고 노선영 선수는 결국 두 선수에 비해 50m 이상 뒤처지며 4초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카메라엔 경기가 끝나고 울고 있는 노선영 선수를 밥 데용 코치가 위로하는 장면이 잡혔다.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선수들의 인터뷰였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노선영 선수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고 김보름·박지우 선수는 노선영 선수를 놔둔 채 둘만 인터뷰 하러 자리를 뜨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김보름은 “잘 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뒤에 (노선영이) 저희와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록이 좀 아쉽게 나온 것 같다”며 팀워크보단 노선영 실력을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박지우 역시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고, 사실 선영 언니가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기록 욕심도 있다 보니까”라고 거들어 더욱 공분을 샀다.
여자 팀추월의 팀워크 논란은 후폭풍이 상당히 거셌다. 선수촌 내부 상황을 내밀히 알 순 없지만 같은 팀원을 비아냥거린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김보름과 박지우를 벌주기 위한 다양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당장 김보름 선수를 후원하던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NEPA)는 불매운동 등 논란이 커지자 후원을 끊고 김보름 선수와 재계약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김보름·박지우에 대한 비난 여론은 거세다 못해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엔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3월 16일 기준 6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해당 국민청원은 인성이 결여된 자들이 국가대표라는 것은 명백한 국가 망신이라 주장하며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아울러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7. 김보름 선수의 인스타그램은 물론 악성 댓글로 비공개 전환되었다.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인터뷰 태도와 내용은 충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비판의 화살이 쏟아진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김보름·박지우 선수 논란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도가 지나친 비난은 모두 김보름, 박지우 선수 개인을 향해 있었다. 팀추월 경기 이후 김보름 선수는 거듭 사과했으며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되었을 때도 기뻐하지 못했다. 일부 선수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추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 역시 바람직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김보름 선수를 겨냥한 무분별한 마녀사냥은 노선영 선수의 잘못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반박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엔 김보름 선수 마녀사냥 논란 이후 노선영 선수의 대국민 사기극을 처벌하라는 등의 청원이 다수 올라와 있다. 김보름 선수와 노선영 선수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과정에서 빙상 연맹 등 체육계 구조 자체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어느새 지워졌다. 파벌을 형성하고 공고화했던 구조 형성의 책임자들은 맹렬한 언쟁 속에 쓱 뒤로 빠져있는 형세였다. 언론엔 연일 김보름 선수, 노선영 선수의 입장만 보도되었고 체육계의 적폐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뭄의 콩 나듯 했다.
현재 김보름 선수와 그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8. 해당 기사의 댓글은 여전히 “뭘 잘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라”는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미시적인 문제는 구조적 문제를 포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 벌어진 이슈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긴 힘든 체육계 내부의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문제 자체와 그것의 발견은 발전의 단초가 되기에 희망적이다. 문제의 발견을 가능케 하고 해결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올림픽은 축제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긍정적인 축제성의 유지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렸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생산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는 언제나 개인의 책임으로 수렴하고 만다. 문제를 일으킨 개인을 향한 마녀사냥과 비난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축제로!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만 몰려 있던 메달 수확 종목은 봅슬레이, 컬링, 스켈레톤 등 종목을 다변화하여 무려 6개의 분야에서 메달을 얻는 쾌거를 이루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비롯한 기존의 유력 종목에선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었고 남북 단일팀 역시 논란이 있었지만 남북 선수들 간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몰입했던 17일 간의 일상은 이제 제자리를 되찾았다. 승부의 짜릿함, 모든 선수의 뜨거운 노력은 우리를 가슴 뛰게 했고 전율시켰다. 이제는 이 에너지를 가슴에 담고 우리만의 경기장에 다시 뛰어 들어야 할 차례다.
올림픽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의 축제성이 한껏 발휘될 때라야 가능하다. 웃고 떠들고, 격앙되고 화합되는 과정에서 감정의 홍수를 맛볼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축제성은 배제와 분열, 폭력과 비난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올림픽을 진영 논리에 활용하고,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데 활용하는 태도에선 발현될 수 없다. 피해의식과 불신, 폭력의 행사, 마녀사냥에서도 발현될 수 없다. 평화를 표방하지만 다양한 국가가 참여해 국력을 겨룬다는 점에서 올림픽은 정치적·외교적 성질을 띨 수밖에 없고 종종 이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기계적인 평화 중심주의·정치적 중립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올림픽 기간 동안 발생하는 문제를 현명하게 풀고 감동과 재미를 즐기려는 성숙한 자세에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이 역설한 ‘평화와 치유의 올림픽’은 정치·외교적 성과에서 온 것도, 상징적인 북한의 참여로 실현된 것도 아니다. ‘평화와 치유’라는 단어는 정치권이나 권력 조직이 만들어 낼 수도, 뺏고 점유할 수도, 선언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평화와 치유는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우정, 땀의 결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자연히 실현되었다. 이상화, 고다이라 선수의 포옹 장면이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각박한 일상 속에서 17일이라는 축제의 기간은 매우 짧다.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한 자세로 축제를 축제로 즐기고 짧은 기간 동안의 재미를 최대한 맛보는 건 어떨까.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힘드니까 말이다.


승주 (ghdrlawn@naver.com)
- [문 대통령 신년회견]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평화의 촛불 켤 것”, 경향신문, 2018. 01. 10 [본문으로]
- 미 국방, “북핵 대응, 여전히 외교가 이끌고 군사는 뒷받침”, 한겨레, 2018. 01. 24 [본문으로]
- “평화올림픽 VS 평양올림픽… 인터넷서 펼쳐진 ‘실검 전쟁’”, 한국일보, 2018. 01. 24 [본문으로]
- “[취재파일] 단결을 위한 단일팀인가? 균열을 위한 단일팀인가?”, SBS, 2018. 01. 13 [본문으로]
- “이낙연 총리, ‘여자 아이스하키 메달권 밖’ 발언 사과”, 한겨레, 2018. 01. 19 [본문으로]
- 최민정 실격에 누리꾼, 킴부탱 인스타그램 뱀 도배...“외신에 실릴라. 그만해”, 국제신문, 2018. 02. 14 [본문으로]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요구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42600 [본문으로]
- “‘팀추월 왕따 논란’ 김보름, 정신과 입원 치료”, 조선일보, 2018. 3. 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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