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눈으로 범죄를 보다
"아동폭력만 사라져도 강력범죄 대부분은 막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흉악범은 아동 학대의 경험 때문에 망가져 있습니다." (표창원)
범죄자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전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대답은 이렇다. 잠시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말이다. 악의 씨앗은 한 존재 속에 처음부터 함께 잉태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문을 던져볼 만하다.
범죄학의 계보를 관통하는 질문은 ‘범죄는 어디에서 오는가’이다. 그러나 그 답은 많은 변곡점을 거쳐 왔다. 범죄생물학은 과학적 사고에 힘입어 19세기 말 등장했으며, 범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범죄생물학은 '개인적인 요인'에서 범죄의 근원을 찾았다. 범죄자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범죄생물학의 대표격인 법의학자 롬브로조(Cesare Lombroso)는 열등한 야만의 유전자를 지닌 생물학적 범죄자 1 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물학적 범죄자의 징후가 신체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했고, 범죄자의 두개골과 얼굴을 분석해 범죄자가 야만인·유색인종과 닮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롬브로조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교도소 의사였던 고링이 정교하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신체적 특성과 행위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후 후튼이 재소자와 일반인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재소자와 일반인보다 재소자 간의 차이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외에도 범죄를 개인의 특성에 귀인시키는 범죄생물학과 범죄심리학은 여러 갈래로 연구되고 주장되어 왔다. 이러한 이론들이 의미하는 바는, 범죄자는 개인의 특성을 의료·화학적으로 '개조'해야만 변화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사회에서 격리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롬브로조의 연구에 반박한 고링은 범죄의 근원은 신체가 아닌 지능적·정신적 결함에 있으므로, 정신적 결함이 있는 아기를 낳는 가족의 생식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의 탄생에는 분명 문제적 개인의 몫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특성에 집중한 연구는 사회현상으로서의 범죄를 충실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령, 경제상황과 범죄율이 상관성을 보인다거나, 범죄 발생률이 지역과 시기에 따라 상이한 것은 '잘못된 범죄자 개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퍼즐이었다. 범죄추이가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따라가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범죄학의 패러다임은 범죄사회학으로 전환되었다. 범죄학의 관심이 ‘개인의 몫’에서 ‘사회의 몫’을 규명하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범죄사회학 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며, 크게 세 가지 흐름을 따라 수많은 이론들이 주장되었다.
둘째로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고찰한 이론도 있다. 머튼의 ‘긴장이론’은 계급과 범죄를 연결시킨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긴장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목표는 같으나 이를 얻을 수단이 없는 하위계층은 '긴장'으로 표현되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목표를 얻어내기 위해 대안적 수단인 범죄를 선택한다. 긴장이론은 이후 '어떤 불법적 기회에 노출되는가'에 주목한 ‘차별기회이론’, '새로운 문화적 목표(일탈)를 지닌 하위문화'에 주목한 ‘하위문화이론’ 등을 통해 보충된다. 이러한 이론들은 사회적 목표의 점검과 함께, 모두가 목표를 이룰 기회를 갖도록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해결책을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범죄자의 자아와 심리에 주목하되 그 형성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이론이 있다. 가장 유명한 범죄학이론인 ‘낙인이론’이 대표적이다. 낙인이론의 핵심은 "사람은 묘사되는 대로 되어간다"로 표현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범죄자로서 명명되고 낙인 찍힌 사람은 스스로를 범죄자로 인식하고 범죄자의 정체성을 형성해 이후로도 일탈,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범죄감소를 위해 낙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즉 일부 범죄의 비범죄화나 회복적 사법 이념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 이야기 같지만, 우리 주변의 수많은 범죄를 이해할 분석틀이기도 하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범죄는 어떨까. ‘죽여 버려야’ 할 ‘사람이 아닌’ ‘악마’로 대중의 분노를 산 이영학은 여론에 힘입어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영학의 행동은 오로지 그의 악마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영학의 범죄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에 비추어 볼 수 있다.
‘긴장이론’은 그의 범죄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 긴장이론에 따르면 문화적 목표를 공유하지만, 이를 달성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한 경험에 울분과 좌절을 느낀다. 그리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 일탈과 같은 대안적 수단을 선택한다. 검찰은 이영학이 희귀질환을 앓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고, 자신을 향한 비난에 큰 분노를 느꼈으며, 문신과 차량 튜닝, 가학적 성행위 등으로 보건대 '남성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영학이 성기 변형 수술을 여러 번 해 부작용으로 발기부전이 생겼다. 이로 인해 성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졌을 것"이라 설명했으며, 이웃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성기 문신을 반강제로 시키고 순종을 강요하는 등 이영학이 사망한 아내를 학대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이영학이 강하고, 성적으로 대담한 ‘남성성’이라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자 좌절감에 범죄, 일탈적 수단을 동원해 가학적 성추행이나 학대를 저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낙인이론’을 통한 설명도 가능하다. ‘낙인이론’에 따르면, 일탈에 대한 낙인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 자신이 인식되는 방식대로 스스로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저는 걔가 커서 성폭행할 줄 알았다. '크면 성폭행범 아니면 사기꾼 되겠다' 생각했다"는 이영학 중학교 동창의 인터뷰를 담았다. 같은 방송에 따르면, 이영학의 중학교 선생님은 "이영학이 교복에 피를 묻히고 성폭행을 자랑했고, 조사 결과 사실이었다"며, 이영학은 이 일로 졸업을 못 했다고 밝혔다. 종합하자면 이영학은 학창시절부터 ‘미래에 성폭행을 저지를 사람’으로 여겨져 왔고, 중학교 때 성폭행이라는 일차적 일탈을 한 후 졸업하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은 물론 학교에 의해 공식적 낙인이 찍혔다. 이 경험은 그가 자신을 성범죄자로 정체화, 성범죄를 계속 저지르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수 있는 것이다.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은 자서전 『신창원, 907일의 고백』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셨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악마’ 같은 범죄자들을 언론에서 만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그 ‘악’을 범죄자 개인의 전유물로 전제한다. 그러나 범죄사회학의 역사는 범죄에서 ‘사회의 몫’이 얼마나 큰지를 오랫동안 증명해 왔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모두의 책임에서 간편하게 눈을 돌려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유하는 악(惡)
현재 여론은 처벌의 강화에만 힘쓰고 있다. 무거운 범죄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이 범죄자를 어떻게 더 가혹하게 처벌할 수 있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소년법 폐지 논쟁도 그렇게 촉발되었다. 잇따르는 소년 강력범죄 소식에 사람들은 분노했고, ‘소년법을 폐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40여만 명의 동의를 받기에 이르렀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비판하며 “형량을 대폭 올리는 법안을 내는 일은 돈이나 인력의 투입이 전혀 필요없으면서도 마치 무언가를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이어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미성년자를 사형시키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라고 되물었다. 미완의 자아를 지녀 사회적 책임이 더욱이 강조되는 미성년자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너를 제거해 버리면 된다’는 식의 대응이 올바르냐는 일갈이다. 그러나 금 의원도 이 말로 비난공세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정말 그게 ‘올바르다’고 믿은 것이다.
엄벌주의와 악마화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범죄 논의를 지켜보면, 몇십 년 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사회의 공분을 샀던 일이 겹쳐진다. 이는 아렌트가 인간성에 대해 번뜩이는 통찰을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역사에 길이 기억된 장면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던 나치 간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다. 그 과정에서 아렌트는 당초 예상했던 바와 달리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다. “그의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특징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thoughtlessness)이었다.” 2
그리고 아렌트는 유대인 사회의 격렬한 분노에 부딪혔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을 ‘희대의 악마’로 그리는 서사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던 차였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사유 능력이 없었을 뿐’이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찬물을 끼얹는 것과도 같았다. 아렌트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저버렸다’, ‘나치를 미화한다’는 비난이 퍼부어졌다. 항의전화와 항의편지가 하루에도 몇백 통씩 쏟아졌고, 아렌트를 공격하는 글이 연일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지인들은 절연을 선언하기도 했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한나 아렌트가 받은 맹렬한 공격을 두고,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사람들이 악을 ‘혐오’하고 싶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너스바움은 혐오란 단순히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넘어, ‘오염’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나를 오염시킬지 모르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끝내는 제거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3 . ‘나는 그런 악과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마음, ‘악을 저지른 악마를 제거’해야 한다는 마음 말이다. ‘범죄’라는 규정을 절대악처럼 받아들이고, 망설임 없이 사형을 주장하고, ‘잠재적 범죄자’라는 말에 대단히 발끈하는 우리 사회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성찰의 가능성은 “나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압력은 강하고 개인은 그에 비해 연약하다. 진짜 ‘악’은 거리 둘 수 있는 오염된 개인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압력 속에 들어 있다. 범죄자 개개인을 ‘악마’로 보며 선 그을 때 우리 내부에 스며든 악은 성찰할 수 없다. 그를 악마로 키워낸 환경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없다. 결국 범죄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막는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진전될 수 없다. 땅 위의 싹만 자를 것이 아니라 땅 속의 뿌리까지 뽑으려면, 개인을 악마로 묘사하는 대신 범죄를 배태하는 사회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사회 어디에서나 부유하고, 구성원 누구에게나 흡입되는 ‘악’의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긴 말들을 아울러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하나였다. 여러 의미로, 범죄에서 사회의 몫은 개인의 몫 이상이다. 범죄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범죄를 절대시할 이유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믿어온 범죄가 어쩌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악’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덮어놓고 ‘범죄니까 나쁘다’고 이야기되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무척이나 복잡다단하다. 그 ‘정하기 나름’인 규정 때문에 진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고민은 자주 덮이고는 한다. 때에 따라 실질적으로 피해자인 이들이 구제받지 못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규정을 이용해 다른 이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우리는 ‘범죄인가’가 아니라 ‘왜 범죄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더 풍부한 시각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 사회학자 밀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얻어지는 최초의 수확은, (...) 개인은 자기 자신의 위치를 그가 몸담고 있는 시대 속에서 찾음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개인은 자기와 같은 환경에 사는 모든 개인의 삶의 기회를 인식함으로써만 자신의 삶의 기회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사회학적 상상은 범죄자가 어떤 사회환경 속에서 범죄자로 자라났으며, 내가 그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무엇이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모색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나비효과>(2004)에서 주인공 에반은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고 있고, 불행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돌린다. 그리고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이후의 미래를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경험한다.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미래에 돌아온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인 것이다.
우리는 그처럼 시간을 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사고실험을 해야 한다. 만약, 이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져 보자는 것이다. 만약 나의 동창이 이영학이라면, 만약 나의 학생이 미래의 신창원이라면, 만약 나의 행동이 사회의 ‘악’을 재생산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번뿐인 시간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바로 이 순간 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내가 시간을 돌려 지금으로 온 에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바로 이 순간 나의 ‘작은 날갯짓’이 미래를 바꾸고 있음을 인지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운 (brisa_le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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