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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편집위원회
사회

<115호> '괴물'같은 범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1) _편집위원 이운

by yonseiji 2025. 12. 18.

은 범죄입니다.”

 

기사 베스트 댓글의 단골 멘트다. 특히 최근 들어 심각성이 대두된 문제일 때는 높은 확률로 이런 댓글이 달리곤 한다.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의도에서다. 댓글을 보는 사람들 역시 이것은 범죄’, ‘이 사람은 범죄자라는 말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 ‘범죄는 끔찍한 잘못, ‘범죄자는 어마어마한 비난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A가 범죄라는 사실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일까. 혹은 A라는 잘못에 있어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할까. 범죄는 절대악과 등치될 수 있는 것일까.

 

 

작년 6, 남자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인 탑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입건되었다. 기사에는 고개를 푹 꺾은 탑의 사진과 함께 최악의 순간이며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는 절절한 호소가 담겼다. 대중은 충격 받고, 실망하고, 분노했다. 댓글란은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 찼다. “반성하고 있다는 탑의 말에 사람들은 혹여나 음악으로 보답한다고 하지 말라고 되받았다. 저지른 죄에 대해 언제까지나 반성하고 자숙하라는 의미다. ‘범죄자인 그가 다시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싫고 못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가 구석구석 이상했다. 첫 번째 의문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기분 좋으려고 대마초를 피운 행동의 어디가 그렇게 돌 맞고 무릎 꿇을 잘못이냐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것이 없었다. 대마초 반대의 논리 중 하나인 관문이론(gateway theory)의 주장처럼 대마초를 관문 삼아 더 심한 약물로 나아간 것도 아니고, 대마초를 흡연하고 경미한 잘못 하나 저지르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언젠가 집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뻗어 버렸던 나와 다를 것이 뭔가. 두 번째 의문은, 야유를 퍼붓는 누구도 그 행동의 어디가 잘못인지를 짚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제기되는 잘못이라고 한다면 법규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그 법규가 왜 정당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잘못된 법규는 누군가의 정당한 자유를 속박할 뿐─당사자의 권리의식과 무관하게─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리 설득력 있지 않았다. 단지 깨달은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범죄라는 규정을 철썩같이 믿고 있으며, 본질을 파고들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적 공분을 사는 범죄도 간간이 발생한다. 작년 인천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중학생 두 명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알게 되었던 중학생들이 유희의 일환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며 대중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영학 사건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금니 아빠로 이름을 알리고 후원을 받은 이영학이 딸의 친구에게 약물을 먹이고 성추행, 살해한 사건이다. 선량한 약자로 그려져 동정을 사던 그의 다른 얼굴이 드러나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엄청난 비난이 쏠렸다. 쓰레기다, 사람이 아니다, 사형해야 한다, 나아가 고문해야 한다는 반응에 이르기까지 격한 분노가 쏟아졌다. 사법체계에 대한 성토도 있었는데, 성난 여론은 소년법을 공격하기도 했고 강력범죄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그 모든 반응의 중심에는 추악한 악마로서의 범죄자들이 있었다. 이 범죄자들이 얼마나 질 나쁜 가해를 저질렀는지 생각하면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말들은 아니다. 오히려 분노의 감정이 치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무거운 잘못에 대한 반응이 오로지 개인에 대한 분노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개인을 악마로 몰고, 비난하고, 더 무거운 형을 주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가?

가령, 우리는 범죄에 대해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가?

 

이 범죄의 어디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다른 범죄와 비교할 때 죄질이 더()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범죄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무엇을 바꾸면 이 범죄를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는 이런 논의보다 범죄자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에 훨씬 집중한다. 범죄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의심 없이 개인을 비난하기 바쁘다는 것은 그들이 특수한, 동떨어진, 분리된 악마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런 사안마다 여론이 무기징역 또는 사형을 끈질기게 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범죄자들이며, 그들을 우리 사회에서 제거해 버린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악마이기에 다시 선량한 사람이 되어 우리 사회에 적응할 리 없다는 것.

 

악마가 단 한 명도 없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범죄를 말할 때 늘 놓치는 부분이 있다. 범죄에서 사회의 몫은 개인의 몫 이상이다.

 

 

 

만들어진 신, 범죄

 

흔히 간과되는 것은 무엇이 범죄인지에 대한 규정부터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범죄이고 범죄가 아닌지는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르다. 환경이 바뀌고, 중시하는 가치가 바뀌면 범죄에 대한 규정도 변화한다. 즉 범죄규정은 그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

 

신 중심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 서구에서는 법 제정의 주체도 신을 대변하는 교회 혹은 신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여겨진 국왕이었다. 당시 범죄로 규정되고 처벌되었던 것은 신과 왕에 대한 범죄였다. 교회나 왕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거나 도전하는 행위들은 엄정하게 대해졌는데, 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아주 가혹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철학자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2003)에 실린, 루이 15세를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다미엥의 판결문에는 “(…)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 오른손은 (…)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 쇠집게로 지진 곳에 (…)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 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하고, (…)” 등 상상을 넘어서는 잔혹한 고문과 처형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왕의 권위에 도전한 일이 얼마나 무거운 죄로 간주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법행위의 초점이 변화한 것은 18세기 후반 이후였다. 이는 부르주아지 계급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부가 증가하고 인구가 급증하며, 범죄의 중심 표적은 재산으로 옮겨갔다. 과거 관행적으로 묵인되거나 인정되어 오던 사소한 소유권 문제에 대하여 점점 더 압력이 강해졌고, 부르주아지 계급의 정치적 힘이 커짐에 따라 범죄규정이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용인되거나 사적으로 해결되던 사유재산 침해행위들이 범죄로 분류되고, 공식적인 절차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사회가 변화하자 범죄규정도 변화한 것이다.

 

범죄규정이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변화한다는 것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정보통신망 보급은 범죄규정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1986년에는 '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몇 차례 개정을 거쳐 2001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현재의 명칭으로 재탄생했다. 법률의 변천 과정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신설되었고, 개인정보 수집에 관한 규정 및 처벌조항도 엄격해지는 등 범죄와 처벌 규정도 바뀌어 왔다. 오늘날에는 AI가 발전함에 따라 인공지능 범죄의 책임소재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를 좇아 범죄에 대한 규정도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다.

 

이에 더해, 범죄규정은 환경에 의해서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 수준이나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 국가에서도 범죄규정이 다른 경우는 많다. 사회에서 어떤 가치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에 따라서도 범죄규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매매, 대마초, 도박 등 논란이 많은 범죄에 관한 규정은 국가에 따라 상이하다. 전면 금지하기도 하고, 전면 허용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국가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 대체복무제를 실시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을 살고 있다. 대체로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 중 사회적으로 더 중요시되는 가치가 무엇인지가 차이를 낳는다.

 

, 범죄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과거에는 범죄였던 것이 비범죄화되기도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그토록 절대시되는 범죄라는 규정이 실은 절대적이지 않은 것이다. 범죄로 규정되었다고 해서, 혹은 중범죄로 여겨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악한 행위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범죄를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았으며, 범죄에는 두 가지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사회 구성원들을 결속시키고 사회의 규범적 합의를 강화하는 기능이다. 둘째는 사회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가 신축성 있고 변화에 개방적이려면 일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가 없는 사회야말로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닫힌 사회라고 말했다. 뒤르켐은 범죄가 곧 은 아니며, 기존의 규범을 깨는 일이 사회에 필요한 원동력이라는 점을 짚어낸 것이다. 뒤르켐의 시각은 일견 범죄에 과한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범죄가 사회적 규정에 불과하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시각은 일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범죄규정들이 헌법소원을 통해 도전 받아 왔다. 헌법소원을 낸 사람들은 해당 규범을 위반한 자였고, 때로는 그 위반이 우리 사회의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냈다. ‘범죄라는 규정을 맹신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뚤어진 저울

 

범죄규정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그 법이 집행되는 단계가 남는다. 사법부의 역할이다. 일반인들은 치열한 공부와 훈련으로 단련된 법조인들의 판결을 믿으며, 또 믿는 수밖에 없다.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모습이다 .  편향되지 않은 공정한 정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  하지만 현실의 법제정자와 법관들은 눈을 뜨고 있다

.

 

그러나 사실 사법은 언제나 정의롭고 평등하지만은 않다. 범죄로 규정되고, 법이 집행되는 과정은 결국 사회 시스템과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편향의 문제가 개입한다. ‘누가 누구에게 저지른 잘못인지에 따라, 즉 범죄자와 피해자의 권력에 따라 사법의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 흔한 예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각주:1] 라는 표현도 사법의 편향성을 가리킨다. 이와 비슷하게 마르크스주의 범죄이론에서는 형법의 계급편향성을 비판한다. 범죄를 규정하는 시각 자체가 부르주아, 기득권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범죄 규정은 권력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같은 범죄를 행했어도 프롤레타리아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형벌도 계급에 따라 편향적으로 이루어진다. 비마르크스주의적 갈등이론에서도 형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국가범죄를 생각할 수 있다.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인 국가범죄 [각주:2] 는 처벌 및 예방이 힘들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국가범죄들은 모두 사후대처만 이루어졌거나, 사후대처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원천 차단이 어려운 이유는 벌어질 당시에 범죄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규정의 주체인 국가가 저지르는 죄를, 국가가 죄라고 낙인찍을 리 없다. 과거 독일의 집권당이었던 나치당 수장 히틀러가 국가권력을 동원해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명백하고 잔혹한 국가범죄였다. 그러나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범죄를 처벌할 국가권력이 어디 있겠는가. 홀로코스트가 국가범죄로 명명되고 책임자들이 처벌된 것은 홀로코스트 이후, 나치당 이후의 과거청산 과정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범죄의 사법처리가 편향적임을 말할 때 사법의 성편향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이 폭력범죄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불법촬영, 스토킹 역시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지는 10년도 되지 않았다. 부부강간도 2007년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정부가 몰카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해당 범죄를 불법촬영이라 부르기로 했고,  1월에는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성폭력·스토킹·데이트폭력 등 젠더폭력에 대해 대응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범죄들은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남성이 몰래 찍은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은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인터넷 사이트를 떠돌고 공유되었다. 피해를 입은 숱한 여성들은 자살했고 [각주:3] , ‘영상 봤는데 어떻더라라는 댓글이 수없이 달리던 어느 여성 연예인은 오랫동안 활동을 멈춰야 했다. 폭력을 저지르고 소비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야 했던 것이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도 비슷했다. ‘사랑 싸움’ ‘집안 문제라는 이름으로 공적 차원에서 외면받기 일쑤였고 피해자들은 국가에 기댈 수 없었다. 피해를 낳는 심각한 범죄였음에도, 가정이 사적 영역으로 여겨지고 여성의 목소리가 약했던 과거에는 이런 범죄들이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여성인권 이슈가 대두되며 최근에야 이러한 문제들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발언권과 시각변화에 따라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처벌이 달라지는 것이다.

 

남편살해와 아내살해에 대한 사법처리를 보면 그 온도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형사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의 살인범죄는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가정 내 학대 등 절망적인 상황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의 배우자 살인범죄는 초범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남성의 배우자 살인범죄 대부분은 재범 이상이며, 끊임없는 가정폭력의 종착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다시 말해, 아내살해의 대부분은 항상 가해자이던 남편이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된 것, 남편살해의 대부분은 항상 피해자이던 아내가 처음으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각주:4]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후자에게 더 무겁다. 폭력을 저질러 오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것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행위이지만, 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것은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죄로서 후자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판결한다. 2014년 발표된 허민숙 교수의 논문 <살인과 젠더>에서는 142건의 배우자 살해 사건을 분석해 사법부의 판단이 가해자·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밝히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121건의 남성배우자에 의한 여성살해사건에서 재판부는 살인의 동기를 주로 '격분'(56.1%) '분노'(16.7%)로 해석하며 이는 감경사유가 된다. 반면 여성배우자가 남성을 죽인 21건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평균 20년에 가까운 장기간의 학대가 원인이 되었으나 "피해자에 대한 생전행위에 대한 평가 여하를 불문하고 (...) 비록 피고인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라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책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2005208)" 등 남성의 가정폭력과 학대는 감경사유로 등장하지 않는다 [각주:5] .

 

최근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심하게 폭행한 일이 있었다. 여성은 뇌사판정을 받아 7일만에 사망했다. 남성은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기소되었고,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이며 '피해자 유족이 탄원서를 냈다'는 이유이다. 이에 관해 한국여성의전화는 논평을 내 "왜 혼인이나 데이트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에서 유독 남성의 폭력행위는 "우발적"인 것이 되고, 감형의 이유가 되는가"라고 분노를 표했다. 이어, 사법부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해 오던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들에서는 "피해여성들의 방위행위를 단 한 번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고", '계획적', '잔혹한' 범행이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결했음을 지적했다. 똑같이 배우자(애인)을 살해한 사건이어도 판결이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근래 들어 검찰 내 성폭력과 그 은폐 시도도 주목받고 있다. 2018 2,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망을 통해 자신이 당했던 성추행과 이를 덮으려는 검찰조직 내부의 시도들을 폭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서 검사는 검사 일을 하는 동안 겪었던 다양한 성폭력 경험을 담은 글을 검찰 내부망에 이어 게시했다.

 

(…)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에고 우리 후배 한번 안아보자’며 와락 껴안아대던 G선배(유부남이었다)나, 
노래방에서 (…) 술도 못 마시는 게 분위기도 못 맞춘다는 말을 피해보려 (그 나직한 눈빛도 피해야 했고) 열심히 두드린 탬버린 흔적에 아픈 손바닥을 문지르고 있던 여자에게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부장이나,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줄테니 나랑 자자’ 따위의 미친 말을 지껄여대더니 다음날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던 H선배(유부남이었다) 따위가 이따금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랫입술을 꾸욱 꾸욱 깨무는 것뿐이었다.
 
그 큰 청에 성폭력 사건 전담할 검사가 여자밖에 없다고 하여 만삭상태에서 변태적인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야 할 때도,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모텔로 떠메고 가 강간을 한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나이트를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부장이나,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 식으로 강간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도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번씩은 우수 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여자가 아닌 남자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능력 부족으로 여자가 80건이나 재배당받아 사건을 대신 처리해줘야 했던 남자후배가 꽃보직에 간다거나 하는 일이… [각주:6]
범죄가 공식적 절차로 다루어지려면 검찰이 기소하여 법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서 검사의 폭로는 기소의 주체인 검찰 내부에서도 왜곡된 성의식이 만연함을 보여 준다. 특히 범죄인 강간에 대하여, 성관계의 동의여부를 폭력적 시선으로 재단하는 부장검사의 발언은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다. 검찰의 공정한 법집행을 믿을 수 없는 형국이다. 
 

결국 범죄의 규정도 처벌도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디에나 작용하는 사회적 권력 속에 저울은 비뚤어진다. 다시 이야기는 한 곳을 가리킨다. 범죄란 절대적이지 않다. 범죄에 대한 윤리적, 법적 판단은 가변적이며 편향적이다. 따라서 범죄는 악과 등치될 수 없으며, 그 규정과 법집행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

 

범죄가 나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범죄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왜 나쁜지, 행위의 본질에 접근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물론, 행위의 본질이 나쁜 것과 범죄규정이 일치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범죄에서 사회의 몫은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악마의 얼굴을 한 범죄자는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말이다.

 

이운 (brisa_leve@naver.com)

  1.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죄를 지어도 돈이 있으면 풀려나지만 돈이 없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가진 자들에게만 법이 관대하다는 냉소를 담은 말이다. [본문으로]
  2. 『국가범죄』, 이재승, 2010, 1국가범죄란 무엇인가[본문으로]
  3. 몰카 피해자에게 전화하면 '자살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중앙일보, 2017-08-05 [본문으로]
  4.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강은영 외 3,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총서 08-11, 2008.12 [본문으로]
  5. 여자친구 죽였는데 '집행유예'... 사법부에 분노한 여성들”, 오마이뉴스, 2018-01-31 [본문으로]
  6. “[단독]‘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 ‘나랑 자자’···서지현 검사, 또 다른 성폭력도 폭로”, 경향신문, 2018-01-3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