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기나긴 학기가 끝났다. 여름방학은 이제 시작이라지만, 사실 여름을 준비한 건 훨씬 이전부터였다. 여름방학에 뭘 할까 상상하고, 그 상상들을 끄적이는 것은 지친 일상 속 낙이었다. 그렇게 학기 초 빈 종이로 시작했던 나의 <여름방학 버킷리스트>는 어느덧 나의 기분 좋은 상상을 담은 글자들로 빼곡해졌다. 정말이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이어트, 해외여행, 토플 공부도 오롯이 올여름의 몫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사업을 말하라면, 나는 단연 ‘여행’을 꼽겠다. 좋아하는 동아리도, 계절 학기도 포기한 채 인생 첫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으로 들뜬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닌듯하다. 친구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다들 여름방학에 가고 싶은 나라 하나씩은 찍어둔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여행 얘기에 열을 올리다 문득, 거의 모두의 방학계획이 여행계획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작년 가을, 방학 어떻게 보냈냐는 개강 인사는 ‘여행 어디 다녀왔냐‘는 인사로 쉽게 대체되곤 했다. ‘유럽 어디까지 가봤니?’ 같은 페이스북 계정은 인기를 얻고 있고, 여행 사진만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판 친구들도 있다. 취업 준비로 대학생들이 그렇게 바쁘다는데, 방학뿐만 아니라 휴학을 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다들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내 또래 모든 청년들이 여행을 다 좋아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휴가에는 방콕1이 최고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유럽을 왜 가는지가 확실치 않다. 유럽을 꼭 가야 했는데, 그 미션을 이제야 수행하는 느낌이랄까. 휩쓸려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들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여행의 양상이 진짜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지도 회의감이 든다. 이것이 여름 유럽여행을 앞둔 나의 복잡한 심경이다. 모두에게 묻고 싶다. 정말 우리의 여행은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에 기인한 것일까. 여행에 대한 열망엔 무언의 압박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여행을 가는 와중에서도 무언가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솔직해져 보자.
여행 강권하는 사회, 그리고 청춘
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다가, 문득 이제껏 ‘여행이 싫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랄까, 사람들은 여행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듯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휴가를 받으면 너무 당연하게 여행을 떠났다. 명절 연휴마다 여행객으로 공항이 붐빈다는 뉴스는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이제 ‘휴가=여행’이라는 공식은 누구에게도 놀랍지 않다. 그때 문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기 이전에, ‘여행 좋아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회는 우리에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묻지 않고, ‘얼마나 좋아하는지’만 물었다. 또 어디를 갔고, 안 갔는지만 궁금해했다. 여행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비슷한 것이 되어서 누구도 대놓고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2 여행 강권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여행 강요하는 사회의 중심에는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떠나라’고 부추기는 미디어가 있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힐링과 욜로(YOLO)라는 트렌드에 맞춰 2018년에는 ‘여행 예능’이 대세로 떠올랐다. KBS 2TV <배틀트립>, MBC <오지의 마법사>, tvN <신서유기>, JTBC <뭉쳐야 뜬다>, 올리브TV <원나잇 푸드 트립> 등의 프로그램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KBS 2TV <혼자 왔어요>와 <하룻밤만 재워줘>, SBS <트래블 메이커> 등 여행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대거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3 하지만 미디어는 단순히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관습을 확고하게도 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기도 하면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미디어는 단순히 대세인 여행을 소재로 사용한 것을 넘어서, 여행을 대세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한 것이다. 실제로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여행 3부작 시리즈는 여행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유도하며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꽃보다 OO>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영향력은 ‘여행과 청춘을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청춘이라는 키워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흥행 보증수표다. TV에, 라디오에, 책에, 강연에 ‘청춘’ 소재가 홍수를 이루며, 청춘을 둘러싼 거대한 ‘청춘 담론’이 실재한다. 고깃집이며, 다방이며 간판에서 청춘이란 단어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3년 말, 때맞춰 등장한 여행 예능 <꽃보다 OO> 시리즈는 바로 이 청춘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흥행에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영석 PD의 프로그램 속에 녹아있는 여행 찬양 서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청춘 담론과 맞닿아 있다. 그가 여행을 바라보는 방식이 사회가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척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찬란한’ 배낭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 시대의 청춘을 그려낸다. 물론, 그는 여행을 청춘‘만’의 전유물로 한정하는 시대착오적인 제작자가 아니다. 오히려, ‘할배’도, ‘누나’도 멋진 여행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먹힌 것도 바로 그 메시지였다. 하지만, 할배도, 누나도 ‘청춘처럼’ 세계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청춘 담론의 확장이지, 결코 청춘 담론의 탈피가 아니다.


‘청춘이 제일 부럽다’며 물꼬를 튼 <꽃보다 할배>의 출연자 신구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찬양한다. ‘청춘일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는 레퍼토리를 언급한 후, ‘아직 60세에 불과한 나는 여전히 청춘’이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청춘처럼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이 ‘편견을 깨는’ 사고는 사실 또 다른 편견을 은근히 양산한다. 진짜 청춘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올지에 관한 문제다. ‘나도 청춘처럼 여행 다닐 수 있다’라는 누나, 할배는 ‘청춘은 여행을 즐긴다’는 문장을 당연히 참인 명제로 전제하고 있다. 누나도, 할배도 청춘처럼 여행하겠다는데, 하물며 청춘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나영석 PD는 <꽃보다 OO>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꽃보다 청춘>을 선보이며 그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미디어는 자꾸만 청춘을 꺼냈다. 그 덕에 청춘은 여행과 강제로 엮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많은 여행 경험을 하라고 권유한다. 보통 이런 충고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시야가 넓어진다’, ‘나이가 들어서 가면 고생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다. 4 여행을 안 가는 청춘을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여기며,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사회는 청춘에게 여행을 강요하고 청춘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춘은 여행을 닮아있고 여행하는 한 우리는 청춘이 된다”
“여행은 청춘을 완성하는, 흩어져 있던 하나의 조각이다”5
위는 한 해외 대외활동 광고가 묘사한 여행과 청춘 사이의 관계다. 우연히 저 멋진 말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행과 청춘이 서로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조금 눈치챈 지금, 저 말들이 멋지게만 다가오지는 않게 되었다.


여행 강권하는 사회, 그리고 청춘
정말 여행이 좋아서 가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여행하는 모든 청년을 사회 구조에 순응하는 바보로 취급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 사회가 강요하는, 그래서 다수가 따라가는 바로 그 여행의 양상이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과거 ‘힐링 열풍’이 불었을 때, 여행은 각박한 현실을 탈피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현재 여행의 그 양상은 과열되다 못해, 다소 결을 달리한다. 이제 여행은 각박한 현실의 탈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각박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역설적인 현상은 ‘여행의 스펙화’로부터 기인한다. 앞서 내가 여행을 올여름의 중대 ‘사업’으로 칭한 것은 단순히 자의적인 어휘 선택은 아니었다. 여행의 주체인 내게 여행이 완수해야 할 미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스펙화는 여행이 남들에게 없는 나만의 스토리, 즉 ‘스펙’으로서 작용함을 의미한다. 자기소개서 속 해외여행 경험의 잦은 등장이 이를 방증한다. 스펙으로서의 여행의 가치는 종종 그 거리와 경비에 비례한다. 일본 여행보다 꽤나 힘줬다는 유럽 여행이나 남미 여행 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스펙이 되는 여행이 단순히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여행을 뜻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스펙화를 단순히 고급화로 이해하면, 오지로 무전여행을 다니며 YOLO 6 를 외쳐대는 많은 청년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여행 스토리는 ‘누가 더 적은 돈으로 오래 세계 일주를 했는가’ , ‘누가 한복을 입고 세계를 알렸나’처럼 ‘누가 더 많이 고생했나’의 경쟁으로 귀결된다. 이는 나를 차별화하는 소재이자 스토리가 되므로, 유의미한 스펙 경쟁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청년들은 나만 아는 여행지를 찾아내는 데 급급하다. 한때 다낭, 라오스는 ‘나만 아는 아지트’로 각광받았으나, 모두의 아지트가 된 지금은 또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 모두가 가는 여행지는 의미가 없다. 모두가 따는 자격증이 스펙으로서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여행이 스펙화되었다는 것은, 여행이 개인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척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다녀온 경험은 자신이 글로벌 인재임을 손쉽게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청년들이 여행 사진과 후기가 업데이트되는 또래들의 SNS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조바심을 느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군 복무 중인 한 친구는 내게 ‘친구들의 여행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만 뒤처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렇듯 여행은 그 존재 자체로 ‘구별 짓기’에 사용되는 문화 자본이 된다. 그런데, 이 여행이라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자본을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이 가진 ‘그 숭고한 가치’는 이러한 경제적 배경을 지워버린다. 사회가 청춘을 찬양하고 그 필요조건으로서의 여행을 치켜세움으로써, 여행은 성역이 되었다. 그렇게 신성한 여행을 돈 없다는 이유로 가지 않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움직이지 않는 청춘들은 ‘돈 없으면 알바해’, ‘시간 없으면 휴학이라도 해서 가야 하는 게 여행 아니니’라는 말을 듣는다. 결국, 여행을 가는 사람도 가지 않는 사람도 옥죄는 이상한 여행문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강박적인 여행 문화에 대해 힘들다고 말하기는커녕 숨기기에 급급하다.
왜 말을 못 해! 왜 말을 못하냐고
강박적인 여행 문화 내에 적지 않은 폐해가 존재했지만, 여행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들을 기회는 적었다. 다음은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들,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숨겨왔던 얘기들이다. 총 4명의 우리 대학 학우들이 용기를 내줬다. 청춘에게 여행 강요하는 사회에서 묻어놔야만 했던 청춘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사실 저는 여행이 좋지 않아요 (21세 여성 L / 집순이)
대학 입학하고 길게 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있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데 딴사람 사는 데를 왜 가?”라고 생각하거든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책을 읽고, 알바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기도 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일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요. 그런데도 모은 돈으로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종용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여행하지 않으면 실패한 청춘인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절 한심하게 보는 시선들이 괴롭습니다. 여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청춘임을 증명하고 싶어요.
#2 저는 여행을 갈 수 없어요 (23세 남성 J / 프로알바러)
‘여행을 가는 데 있어서 돈이 없다’는 건 핑계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여행을 다녀와라‘는 말은 아르바이트만 해서는 생계유지도 빠듯한 사람들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여행 경비도 여행 경비지만, 학비며 생활비며 제가 버는 입장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다는 게 더 부담이에요. 여행 갈 시간이 없다는 게 정말 ‘비겁하고, 청춘답지 못한 변명’인가요. 젊은 시절 푼돈은 중요치 않다며 여행 한 번 다녀오라는 어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행은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 선택지가 없었거든요.
#3 휴학하고 유럽 가다 (24세 여성 H / 취준생)
4학년이라고 취업전선에 순순히 뛰어들기 싫어서 두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다들 제가 멋있다고는 하는데, 무슨 제가 콜럼버스라도 된듯한 그런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다녀온 건 아니에요. 취업하면 휴가를 못갈 것 같기도 하고, 이제껏 변변찮은 여행 한 번 못 다녀온 게 부끄러워서 제 사정에 비해 무리했죠. 두 달 동안 자유여행으로 떠난 유럽에서 별별 해프닝이 다 생겼어요. 그리고 그걸 회사면접에서도, 서류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다들 흥미로워하시더라고요. 어른들과 여행 얘기를 할 때면 저를 어리지만 당차고, 굉장히 멋있는 젊은이처럼 치켜세우곤 하세요. 두 달 유럽 자유여행 그 사실 하나 만으로요. 재밌지 않나요?
#4 여행은 반드시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어야 하나요? (22세 여성 K / 자칭 여행전문가)
저는 여행을 자주 다녀오는 편이에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친구들끼리 모인 카카오톡 채팅방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꼭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장문의 글을 올려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드시 남미나 아프리카에 가면 본인을 돌아보고 오는 걸까요? 그리고 왜 그 글을 전체공개로 설정한 후 SNS에 올리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주기 식이에요.
네, 그리고 저 역시도 떳떳하지 못해요. 제가 가는 여행에 모두가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건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부담되더라고요. 특히 유럽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여행지에 갔을 때는 저도 괜찮은 문구와 사진을 SNS에 올려서 ‘나 이렇게 잘 다녀왔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어요. 근데 사실 그때 그 유럽 여행 정말 별로였거든요. 왜, 파리신드롬 7 있잖아요. 돈 들인 거에 비교해서 감흥도 적었는데도, 전 대단한 인생의 경험을 얻은 듯 후기를 말해야 했어요. 왜 꼭 여행에서 ‘저 자신’을 찾아야 하는 거죠? 요즘 인도가 가고 싶긴 한데 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꾸만 미루게 돼요. 이러다 여행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
여행이 주는 그 느낌과 감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 인생 여행이라고 꼽을 만큼 소중한 기억도 있다. 작년 여름 혼자 떠났던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여행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들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해본 자의 열폭 8 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을 통해 다른 경험을 얻고 나를 돌아보며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어서다. 매일을 여행처럼 산다는 누군가의 말도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to do list가 빽빽한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여행마저 ‘청춘이 필히 해야 할 버킷리스트’로 여겨지고, 여행만이 삶을 변화시키고 청춘의 필수 덕목인 양 강요하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9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맹목적으로 여행을 가는 것 또한 건강하지 않다. 이대로라면 여행을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까지 잃을 판이다. 게다가 난 여전히 여행을 갈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계급적 배경을 빼고 그 여건을 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무작정 떠나고 보라니 폭력적이지 않은가.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을 비판하고 싶었다.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이런 여행을 하세요!’따위의 방향성을 제안하고 싶지는 않다. ‘건강한’ 여행, ‘진정한’ 여행의 기준을 정하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앞에서 비판했던 꼰대들과 다를 게 뭔가. 다만 여행을 좀 자유롭게 풀어줬으면 한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본인을 옥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자소서 한 줄을 늘이기 위해 끙끙대는 여행이 아니라, 강박이 사라진 여행을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여행가는 이들도, 가지 않는 이들도 여행 찬양 담론에 몸을 실어 침묵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는 없어져야 한다. 여행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사회 분위기, 여행이 실망스러웠다고 말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그제야 여행이 정말 좋았다고 말할 용기도 생기는 게 아닐까. 따라서 묻고 싶다.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나요, 정말?”
지민 (iamjimin0909@gmail.com)
- ‘방’에 ‘콕’ 들어앉아 산다는 뜻의 은어. [본문으로]
- 김영하, 『보다』, 문학동네, 2014.09.18., p. 47 [본문으로]
- “대세가 된 여행예능, 관광청 덩달아 신났다”, 일요신문, 2017.10.28. [본문으로]
- “여행하지 않을 자유”, 캠퍼스 씨네21, 2016.09.26. [본문으로]
- 하나투어 투어챌린저. [본문으로]
-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직역하면 ‘네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 외지인이 파리에 대한 환상과 실상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해 겪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다. [본문으로]
- 열등감 폭발의 준말. [본문으로]
- “여행강요 좀 하지마세요”, 매일경제, 2018.04.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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